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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김영협(金永協)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7.4717-20150630.06252570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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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영협,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7
형태사항 크기: 25.6 X 40.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7년 김영협(金永協) 서간(書簡)
1817년 4월 1일에 김영협이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병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번 종형을 통해 당신이 편안하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은 전염병으로 삼종형의 장자와 어린 손자들을 한 달안에 잃어버렸으나 돈이 없어 장사도 못 지내고 세금도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지난 가을 당신이 도와주겠다고 한 약속이 있으니 돈 50여민을 보내달라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17년(순조 17) 4월 1일에 金永協(1775~1853)이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7년(순조 17) 4월 1일에 金永協(1775~1853)이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永協은 본관이 宣城(禮安), 자가 恭仲으로, 雙巖 金埅(1706~1778)의 손자이자 金江鍊(1738~1806)의 아들이다. 李秉淳의 부친인 李龜朋金埅의 사위이므로, 金永協李秉淳의 고종사촌이 된다. 이 시기 李秉淳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먼저, 지난가을 하룻밤 동안 가르침을 받았던 것은 다년간 그리워한 자신의 마음을 다하기에는 부족했다고 하였다. 소식을 받을 길이 없어서 답답해하던 차에 돌아온 從兄을 통하여 날씨가 淸和한 근일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철따라 건승하고 衙內의 여러 식구들도 고루 평안하다는 것을 대략 듣고서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金永協 자신은 편모께서 평안하신 날이 없고 각 집의 우환이 많아서 이미 지극히 애를 태우는 데다 전염병 기운이 크게 치성하여 三從兄이 長子와 어린 손자를 한 달 안으로 잃었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를 넘겨서도 장사를 지내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계책이 졸렬함을 스스로 알겠다고 하였다. 이어, 三稅를 낼 길이 없는 상황에서 지난가을 李秉淳이 했던 약속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끝내 실현되지 않았으니 매우 의아하다고 하였다. 이에 50緡錢을 보내줘서 자신의 위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7년 김영협(金永協) 서간(書簡)

前秋一宵承
誨。何能盡積歲向仰之忱。明嶺便
同涯角聲信。無緣承接。方用菀陶。
料外。從兄歷還。槩伏聞近日淸和。
政體候若序萬衛。渾衙諸致均安。
何等伏慰之至。從弟。偏候無寧日。各
家憂病。不一而足。已極煎悶。而沴氣大熾。三
從兄喪。其長子及穉孫。於一月內之慘痛。
危怖◘◘說。成造之役。經年未訖。
自知拙謀。徒勞心力。而且三稅收納。亦無
其路。企待前秋之約。而竟寂所望。殊
甚訝菀。不得已起送農奴。可以下諒此間
形勢矣。伏望五十緡錢。另施惠及。以濟
此急。則何幸如之。餘。便回得安信。以副遠
忱。不備。伏惟
下察。上候書。
丁丑 四月 初一日。內從弟 金永協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