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7년(순조 17) 8월 25일에 李載延이 여러 근황을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7년(순조 17) 8월 25일에 李載延이 여러 근황을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載延은 본관이 延安, 자가 致謙으로, 生員試에 입격하고 縣監 등의 관직을 지냈다. 그의 부친은 李之受인데, 李之受는 李秉淳의 조부인 李世述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李秉淳에게 李之受는 고모부가 되고, 그의 아들 李載延은 고종사촌이 된다.
먼저, 지난번에 李秉淳를 방문하였던 것은 겹겹이 쌓인 회포에서 기인한 것이었으나 병으로 인해 여유롭게 정담을 나누지 못하였기에 돌아와서도 남은 회포가 耿耿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李秉淳의 편지를 받고서 가을 날씨가 추운 이때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가 평안하고 進士가 평안히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進士는 李秉淳의 동생인 李民淳의 아들 李彙正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여로에서 얻은 여독이 돌아와서도 아직 낫지 않았고 집안일이 과거보다 갑절이나 소란스럽다고 하면서, 거의 죽을 나이에 이 무슨 운수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柳실이가 문에 있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 심경을 생각해 보면 한갓 좋지 않은 마음만 더해진다고 하였으며, 며칠 동안 구토와 설사를 할 뿐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있음을 이렇게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崔실이의 딸은 현재 평안하다고 하는데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다고 하였다. 가을철 官事가 필시 조용하게 조섭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라고 하면서, 李秉淳가 늙은 나이로 수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幹從이 무사하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幹從은 李厚淳인 것으로 보인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