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7년 8월 13일, 鄭弼漢이 부탁받은 梳貼을 사서 보내면서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7년(순조 17) 8월 13일에 鄭弼漢이 부탁받은 梳貼을 사서 보내면서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시기 李秉淳은 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鄭弼漢은 參禮察訪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먼저, 지난여름에 지나다 인사드린 뒤로 서글픈 가운데 그리운 마음이 간절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심부름꾼이 도착하여 그 편에 李秉淳의 편지를 받게 되고 서늘한 가을철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연이어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鄭弼漢 자신은 殘郵에서 관원들을 迎送하는 일로 정신이 없고 신병까지 겹쳐 장시간 건강하지 못하니 매우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李秉淳이 편지로 말한 女梳貼은 營邸에 분부하여 너비와 길이가 넉넉한 것으로 잘 골라 紙所에서 사오게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근래 紙物이 매우 귀하여 지금의 極品이 예전의 中品보다도 못한 실정이라고 하였다. 심부름꾼의 말을 들어보건대 忠淸監營에서 산 것보다 더 낫다고 하는데, 과연 쓰기에 적합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사서 올린다고 하였으며, 가격은 2냥 5전이기 때문에 잔돈 5전을 도로 봉해 올린다고 하였다. 끝으로, 내달 보름에서 스무날 사이에 말미를 얻어 귀향하려고 크게 마음먹고 있다고 하면서 뜻대로 된다면 歷路에 인사드릴 계획이라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