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7년(순조 17) 5월 19일에 卞啓來가 院屬이 下吏들에 의해 침탈당한 문제를 잘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7년(순조 17) 5월 19일에 卞啓來가 院屬이 下吏들에 의해 침탈당한 문제를 잘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면, 수신자인 李秉淳는 淸安縣監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淸塘은 淸安縣의 이칭이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는 1814년(순조 14) 1월에 淸安縣監로 제수되었다. 또한 卞啓來는 이름에 ‘華’ 자가 들어간 書院에서 이 편지를 작성하였으며, 자신을 ‘民’이라 칭했다는 것에서 일종의 민원인으로서 이 편지를 작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書院은 아마도 華陽書院인 듯하다. 卞啓來는 일전에 書院에 入齋하였다가 비로 길이 막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그는 淸安縣에 거주하고 있는 院屬이 下吏들에 의해 침탈을 당하여 도움을 청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수령인 李秉淳가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또 安在元에 대한 일은, 安在元이 이 書院에서 관리하는 冶匠의 아들이면서 이른바 擊軍이라고 하였고 이와 관련된 原案이 이곳에 있다고 하면서 下諒해 달라고 하였다. 빈자리가 된 執事生은 그 후임을 채우는 것이 규례이니 原案에 등재해 달라고 청하고, 전례가 있는 일에 대해 피차간에 서로 고집한다면 서로 보살펴주는 도리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下諒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건대, 院屬民이 軍丁으로 차출된 문제 등에 대해서 卞啓來가 書院 입장에서 민원을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