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순조 16) 2월 1일에 李鼎秉이 여러 소식을 전해 주고 선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6년(순조 16) 2월 1일에 李鼎秉이 여러 소식을 전해 주고 선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惠慶宮의 喪事로 中外의 사람들이 모두 애통해 하고 있다고 하였다. 歲前과 歲後에 간혹 왕래하는 인편을 통하여 대략 근래 李秉淳가 평안하다는 소식을 듣기는 하였으나 편지를 받지는 못하여 늘 耿耿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방금 李秉淳의 편지를 받고 보니 직접 만나 쌓인 회포를 푸는 것 못지않았다고 하였다. 더구나 아직 추운 계절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기뻤다고 하였다.
자신은 지난겨울에 냉방에서 무한한 고생을 실컷 겪었고 현재 맡은 직책으로 인해 장기간 대궐에서 鎖直하여 나가지를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 가련하고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應敎 어르신(李龜雲)이 다행히 都廳에 차출되어 陞資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요즘 세상에도 公道가 있기는 하다고 하였다. 이는 李龜雲이 園所都監都廳에 차출되어 후에 葬禮가 순조롭게 거행되면 都廳에 대한 賞典이 시행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른 것이다. 다만 노인의 근력으로 필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것이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來卿 兄(草庵 李泰淳)은 어제 올라왔다고 하고 彛敍 兄(俗隱齋 李龜星)은 일전에 江華로 갔다고 하였다. 惠慶宮의 葬禮가 끝나게 되면 즉시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갈 것이고 돌아가는 길에 방문할 계획이라고 하였으나 기필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끝으로, 어려운 官衙 형편에도 불구하고 두 種의 선물을 보내준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