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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이정병(李鼎秉)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6.4717-20150630.0625257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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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정병,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6
형태사항 크기: 29.3 X 39.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6년 이정병(李鼎秉) 서간(書簡)
1816년(순조 16) 2월 1일에 이정병(李鼎秉)이 여러 소식을 전해 주고 선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응교 어르신이 다행히 도청에 차출되어 승자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요즘 세상에도 공도가 있기는 하다고 하였다. 래경 형은 어제 올라왔다고 하고 이서 형은 일전에 강화로 갔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16년(순조 16) 2월 1일에 李鼎秉이 여러 소식을 전해 주고 선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6년(순조 16) 2월 1일에 李鼎秉이 여러 소식을 전해 주고 선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惠慶宮의 喪事로 中外의 사람들이 모두 애통해 하고 있다고 하였다. 歲前과 歲後에 간혹 왕래하는 인편을 통하여 대략 근래 李秉淳가 평안하다는 소식을 듣기는 하였으나 편지를 받지는 못하여 늘 耿耿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방금 李秉淳의 편지를 받고 보니 직접 만나 쌓인 회포를 푸는 것 못지않았다고 하였다. 더구나 아직 추운 계절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기뻤다고 하였다.
자신은 지난겨울에 냉방에서 무한한 고생을 실컷 겪었고 현재 맡은 직책으로 인해 장기간 대궐에서 鎖直하여 나가지를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 가련하고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應敎 어르신(李龜雲)이 다행히 都廳에 차출되어 陞資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요즘 세상에도 公道가 있기는 하다고 하였다. 이는 李龜雲이 園所都監都廳에 차출되어 후에 葬禮가 순조롭게 거행되면 都廳에 대한 賞典이 시행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른 것이다. 다만 노인의 근력으로 필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것이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來卿 兄(草庵 李泰淳)은 어제 올라왔다고 하고 彛敍 兄(俗隱齋 李龜星)은 일전에 江華로 갔다고 하였다. 惠慶宮의 葬禮가 끝나게 되면 즉시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갈 것이고 돌아가는 길에 방문할 계획이라고 하였으나 기필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끝으로, 어려운 官衙 형편에도 불구하고 두 種의 선물을 보내준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6년 이정병(李鼎秉) 서간(書簡)

惠慶宮喪事。痛均中外。歲前後或因
往來便。槩聞近來平信。而未承
手墨。恒用耿耿。卽拜
惠狀。滿幅䌤續。無減奉攄積懷。
矧審猶寒
政履起居安衛者乎。弟。三冬冷邸。
喫盡無限苦狀。而方以見職長鎖
禁直。絶出不得。憐悶奈何。應敎
幸差都廳。可以陞資。今世亦有公道。
而但老人筋力。必難堪遣。以是爲慮耳。
來卿兄昨者上來云。而彛敍兄。則
日前作沁都行耳。襄禮後。則
卽當決歸之路。進攄預計。而亦
何可必耶。所惠兩種。以若殘局。
何暇辦此。感荷之餘。繼以難支
耳。餘。忙甚。漏萬掛一。不宣。
伏惟。
丙子 二月 初一日。弟 鼎秉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