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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이원연(李元延)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6.4717-20150630.062525700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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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원연,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6
형태사항 크기: 32 X 3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6년 이원연(李元延) 서간(書簡)
1816년(순조 16) 3월 17일에 이원연(李元延)이 근황을 전하고 돈과 물품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초에는 이달 보름에 형제가 나란히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숙병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때에 먼 길을 가는 것은 거론할 바가 아니라고 하였다. 또 답장을 주는 편에 40금(金)을 모쪼록 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울러 남초(南草)와 육포(肉脯) 등도 넉넉하게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16년(순조 16) 3월 17일에 李元延이 근황을 전하고 돈과 물품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6년(순조 16) 3월 17일에 李元延이 근황을 전하고 돈과 물품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元延의 부친은 李之受인데, 李之受李秉淳의 조부인 李世述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李秉淳에게 李之受는 고모부가 되고, 그의 둘째아들 李元延은 고종사촌이 된다. 李元延1813년(순조 13)에 문과에 급제한 바 있다.
먼저, 오랫동안 격조하여 ‘鬱陶’ 두 글자도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기에 부족한 말이라고 하였다. 이어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화창한 봄에 평안하게 지내고 있는지, 宜仁의 소식을 근래 받고 있는지, 누가 淸安으로 와서 곁에서 모시고 있는지 물었다.
李元延 자신은 막내 동생(李永延)의 祥祭를 지내고 나니 애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병으로 인해 가서 곡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책하였다. 당초에는 이달 보름에 형제가 나란히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疥瘡이 大發하고 숙병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때에 먼 길을 가는 것은 거론할 바가 아니라고 하였다. 또 답장을 주는 편에 40金을 모쪼록 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울러 南草와 肉燭, 肉脯도 넉넉하게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6년 이원연(李元延) 서간(書簡)

積阻音候。鬱陶二字。猶屬歇後
語也。伏未審春煦
視篆體候連享萬安。宜鄕平信。近或
得聞。而孰來侍傍耶。種種伏溸無
任下誠。表從弟。舍季寃祥已過。痛割情
私。已無可言。而病不得趁哭。此何人斯。初
擬今望。兄弟聯轡還歸。疥瘡大肆。宿
祟添㞃。見方委痛。此際遠役。非所擧論。姑
逃脫臘前。有春間得送之敎。
此回便。四十金某條惠貸。則庶
施之。千萬伏望。數年內從弟亦望。
奉呵奉呵。南草
與肉燭及肉
脯。亦優數下
惠。以救濱死
之命。亦是行
仁政之一端。
病伏涔涔
中。屈指計日
以待耳。餘
萬。病難長
語。姑不備。上言。
丙子 三月 十七日。表從弟 李元延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