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2월 3일, 韓致應이 손자를 잃은 일에 대해 위문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6년(순조 16) 2월 3일에 甹山 韓致應(1760~1824)이 손자를 잃은 일에 대해 위문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慈宮께서 서거하여 中外가 모두 애통해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아마도 1815년(순조 15) 12월 15일에 81세를 일기로 昌慶宮 景春殿에서 서거한 惠慶宮 洪氏의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李秉淳의 편지를 받고 봄추위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평안함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李秉淳이 손자를 잃은 일에 대해 차마 뒤늦게 언급하지 못하겠으나 선한 이에게 복을 내리는 이치가 어쩜 이리도 어그러지게 되었느냐고 반문하였다. 늘그막의 애통한 심정으로 필시 건강이 많이 손상되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더욱 우려가 된다고 하였다. 韓致應은 李秉淳에게 나아가 조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도 이러한 불행을 당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비통하고 괴로운 말을 할 길이 없어 조문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양해를 구하였다. 아울러 李秉淳이 보중하여 건강을 손상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韓致應 자신은 7달 동안이나 아침저녁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죽을 지경이라고 하였다. 또 나라의 喪事를 당하여 개인적인 사정을 감히 언급하지 못하여 이렇게 바쁜 공무를 보고 있으니 스스로 가련하다고 하였다. 이 당시 韓致應은 藥房 副提調와 兼都承旨의 직임을 띠고 있었다. 끝으로, 李秉淳이 邑務가 바쁘고 심경이 애통할 터인데도 자신을 잊지 않고 여러 가지 物種을 보내준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