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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정광식(鄭光植) 외 1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6.0000-20150630.06252570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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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광식, 정광왕, 이병순
작성시기 1816
형태사항 크기: 31 X 42.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6년 정광식(鄭光植) 외 1인 서간(書簡)
1816년 2월 11일에 정광식(鄭光植) 등이 방문 계획을 전하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새해가 되기 전에 종숙(從叔) 편으로 상대방의 편지를 받았다고 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수령을 지내고 있는 상대방을 비롯하여 친지들의 안부를 묻고, 궁하게 지내고 있는 자신의 근황도 전했다. 끝으로, 자신이 봄에 소장(訴狀)을 감영(監營)에 올리러 갈 때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16년 2월 11일, 鄭光植 등이 안부를 교환하고 방문 계획을 알리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6년(순조 16) 2월 11일에 鄭光植 등이 안부를 교환하고 방문 계획을 알리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鄭光植은 牛川 鄭玉의 曾孫이고, 李秉淳鄭玉의 外曾孫이다. 李秉淳의 조부인 李世述鄭玉의 딸인 淸州鄭氏와 혼인하였다. 鄭光植의 先系는 牛川 鄭玉(曾祖)-韶溪 鄭惟簡(祖)-鄭必良(父)이다.
먼저, 歲前에 從叔께서 돌아오셨을 때 李秉淳의 편지를 받았다고 하면서, 내용이 同輩끼리 정을 토로하는 듯하여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이는 자신 때문이 아니라 先人 때문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사례해야 할지 참으로 모르겠다고 하였다. 새봄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새해를 맞아 더욱 복되고 李秉淳의 從叔과 조카들이 고루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령으로 재직하는 일이 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고을이 궁벽지고 공무가 바쁘지 않아 李秉淳에게는 가뿐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궁하게 지내며 그저 한 살을 더 먹었을 뿐이라고 근황을 전하였다. 끝으로, 丹陽의 天水에 관한 일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못해서 봄에 한 번 監營에 呈訴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감영에 갈 때 李秉淳에게 인사드리러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6년 정광식(鄭光植) 외 1인 서간(書簡)

歲前從叔之歸。伏承
手誨。一紙細寫。促行披覆傾
倒。有若同輩討情。然自顧無
似。何敢承當。直是先人之故爾。
感涕交零。實不知所以爲謝也。
厥後歲飜。而雲泥涯角。兩樣
相阻。固付之事勢無奈。一自殘心
尙有。未化於先契最深。伏不審
履玆新春。
視篆體中迓新增福。從叔咸
戚。均得平善否。遐土吏役。雖
非逸老之情。而邑僻事簡。想
必有遊刃餘地。爲之仰賀切切。
戚從弟。省率僅依。而窮居契
活。只是添一齒耳。增百憂耳。
餘。何足仰浼於遠地情音也。丹陽
天水事。尙未拔落。春和似有
一番呈營之擧。其行可以因便進候
耳。不備。伏惟
下察。謹再拜上候書。
丙子 二月 十一日。戚從弟 鄭光植 光枉 等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