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10월 10일, 尹鍾烈이 科擧에 응시하는 尹宷烈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6년(순조 16) 10월 10일에 尹鍾烈이 科擧에 응시하는 尹宷烈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면, 수신자인 李秉淳은 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은 1814년(순조 14) 1월에 淸安縣監으로 제수되었다. 또 발신자인 尹鍾烈은 丹陽郡守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尹鍾烈은 1814년(순조 14) 12월에 丹陽郡守로 제수되었다. 尹鍾烈은 李秉淳의 從氏[李大淳]와 조카[東屛 李彙正] 및 先正臣[退溪 李滉]의 宗孫[古溪 李彙寧]이 모두 司馬試에 入格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하면서 축하의 뜻을 전하고, 老先生[退溪 李滉]의 餘澤이 아직 다하지 않았음을 더욱더 깨달았다고 하였다. 이어 延豊에 거주하는 자신의 從弟 尹宷烈은 湖左의 巨儒인데 前年에 본 覆試에서 아깝게 낙방하고 올가을에 또 본 會試에서도 낙방하고 말았다고 하였다. 이번에 그가 復科를 보게 되는데 李秉淳이 만약 試官이 된다면 그를 잘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