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5월 8일, 沈尙之가 억울하게 사건에 연루된 張哥들에 대한 처리 결과를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6년(순조 16) 5월 8일에 沈尙之가 억울하게 사건에 연루된 張哥들에 대한 처리 결과를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沈尙之는 일전에 자신이 秘甘을 보냈던 것은 부득이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도적을 다스리는 법은 이미 口招에서 언급되었으면 죄가 있든 없든 간에 해당 사람을 잡아와 사실 여부를 조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以公이란 자는 이미 李秉淳이 論報하여 잡아 보낸 자이니 도적임이 분명하고, 또 杖을 한 대도 치지 않았음에도 숨김없이 토설하였는데 모월 모일에 누구와 작당하여 鵂巖寺에서 승려들을 구타하고 器皿과 衣服을 탈취했다고 진술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재삼 공초를 받아보아도 진술에 변화가 없었다고 하였으며, 두 張哥가 以公과 직접 만나본 결과 또 진술을 한 글자도 번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張哥가 낙담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부득이하게 秘甘을 보냈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李秉淳의 편지를 받고 생각해 보니 以公이 張哥들에게 유감을 품고 그들을 망측한 죄과로 빠트린 것이 극히 흉패하다고 하였으며, 그래서 張哥들을 특별히 용서해 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낸 秘甘을 단단히 봉하여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울러 以公은 범죄의 진상이 이미 드러났고 아무렇게나 허위로 진술한 것이 더욱 괘씸하다고 하면서 엄하게 처벌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참고로 당시 沈尙之는 淸州營將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