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3월 1일, 李秉耆가 朝報 등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6년(순조 16) 3월 1일에 李秉耆가 朝報 등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면, 수신자인 李秉淳은 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淸塘은 淸安縣의 이칭이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은 1814년(순조 14) 1월에 淸安縣監으로 제수되었다. 먼저, 王妃가 승하한 것에 대한 애통한 심경을 표하였다. 이는 아마도 1815년(순조 15) 12월 15일에 81세를 일기로 昌慶宮 景春殿에서 서거한 惠慶宮 洪氏의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아직 날씨가 쌀쌀한 시기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평안할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위안이 되면서도 궁금하다고 하였다. 10년 동안 한가하게 보내며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이에 따라 李秉淳과 만날 길이 없는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표하였다. 또한 李秉淳이 榮掃하러 갈 때 자신을 방문할 줄로 여겼는데 끝내 방문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크게 한탄했다고 하였다. 龜巖書院을 잘 봐주는 일에 대해 李秉淳이 소홀히 하지 않을 줄로 생각한다고 하면서, 더욱더 유념해 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龜巖書院이 淸安 관내에 있었기 때문에 李秉淳에게 이러한 부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전에 朝報를 槐山 수령에게서 빌려 보았는데, 槐山 수령이 南邑으로 移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더 이상 빌려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都目政事에 관한 내용을 얻어 볼 수 있는 데가 없다고 하면서, 전하는 사람에게 그에 관한 문서를 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는 이해 2월 19일에 槐山郡守였던 金履完이 密陽府使로 자리를 옮긴 일과 관련된 것이다. 추신에서는, 李秉淳이 이번 都目政事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는지 묻고 朝報를 정월 치부터 모두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