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15년 김희박(金熙璞) 외3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5.4792-20150630.062525700162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희박, 김희분, 김희질, 김희복,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작성시기 1815
형태사항 크기: 33.1 X 40.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5년 김희박(金熙璞) 외3인 서간(書簡)
1815년 2월 26일에 김희박 등이 손자를 잃은 일에 대해 위문하기 위해 이병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손자를 잃은 상대방을 위로하고 과부가 된 며느리의 안부를 묻고 있다. 이어서 자신들은 각자 병과 상을 당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끝으로 작년 섣달에 당신께서 보내주신 편지와 선물에 감사하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15년(순조 15) 2월 26일에 金熙璞 등이 손자를 잃은 일에 대해 위문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5년(순조 15) 2월 26일에 金熙璞 등이 손자를 잃은 일에 대해 위문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李秉淳의 손자가 요절한 데 대해 애통한 마음을 전하였다. 더구나 李秉淳이 임지에서 이러한 일을 당하게 되었으니 더욱 슬픔을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李秉淳이 이와 같은 역경을 이미 많이 겪었으므로 슬기롭게 슬픔을 절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李秉淳은 이 당시 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어 봄이 깊어져 가는 이때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喪中에 있는 李秉淳이 건강이 악화되지는 않았는지, 과부가 된 며느리(아들 李彙文의 처 義城金氏)가 어떻게 연명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또 자신들의 근황을 전해 주었다. 먼저 金熙奮은 뜻밖에 頰腫을 앓아서 한 달 넘도록 고생하고 있다고 하였고, 金熙質은 또 浮症을 앓고 있다고 하였으며, 金熙復은 정초에 承宗子婦의 喪을 당했다고 하였다. 작년 섣달에 李秉淳이 편지를 보내주고 겸하여 薄俸에 선물을 보내준 데 대해 감사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바로 답장을 올리려고 하였으나 인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위문편지를 통해서 감사의 뜻을 아울러 전한다고 하였다.
발신자인 金熙璞金甲東의 아들이고, 金熙奮金熙質은 형제지간으로 素巖 金鎭東의 아들이고, 金熙復은 臥隱 金翰東의 아들이다. 李秉淳이 海隱 金熙成과 사돈지간이므로, 이들 모두 李秉淳과 戚分이 있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5년 김희박(金熙璞) 외3인 서간(書簡)

省式。
令孫事。有口不忍言。把筆不忍書。天
乎鬼乎。何不悔禍。至此極也。況客館
遭此。種種情地。尤難堪耐。第切悲
仰。然座下於此等逆境。已多備嘗。
想有所達於季子嬴博之痛而知所
裁矣。春意向闌。不審
視篆服履。能無損節。孀婦亦何以
爲命。念來。更切傷惻。戚從等。也偶
病頰腫。彌月委苦。質也又病浮症。不無
深慮。復則正初奄遭承宗子婦喪。
數年喪亂之餘。又有此事。滿室
悲慘。無足言者。奈何。客臘
書問。兼有伴簡。薄俸遠念。殊極
感荷。卽欲奉謝。而偵便未易。玆因
慰書而兼之。亦甚不敏。那間倘
有由還之行否。卽聞。伊間又爲雖
死不忍見之事云。此行。則想必故
避也。餘萬。非書可旣。姑
此不宣。伏惟
服下察。謹謝慰狀。
乙亥 二月 二十六日。戚從 金熙璞 熙奮 熙質 熙復 等 慰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