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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김희분(金熙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5.4792-20150630.06252570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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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희분,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작성시기 1815
형태사항 크기: 28.5 X 38.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5년 김희분(金熙奮) 서간(書簡)
1815년 3월 4일에 김희분이 청피(靑皮)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병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당신의 손자가 죽은 사실을 매우 슬픈 일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은수의 병은 아직 나아지지 않고 있어서 약물 치료를 하고 있는데 청피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하였다. 이에 청안현감인 당신께서 청피와 약간의 돈을 보내주실 것을 부탁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15년(순조 15) 3월 4일에 白山 金熙奮(1760~1822)이 靑皮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5년(순조 15) 3월 4일에 白山 金熙奮(1760~1822)이 靑皮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熙奮은 素巖 金鎭東의 아들로, 李秉淳의 사돈인 海隱 金熙成과 6촌지간이다. 즉 金熙奮金熙成은 모두 修撰 金汝鍵의 曾孫이다. 또 李秉淳은 당시 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먼저, 지난달에 李秉淳에게 보낸 위문편지가 이미 도착했는지 물었다. 이어,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병순과 임지로 따라온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李秉淳의 손자의 시신이 고개를 넘었다는 얘기를 근래 들었다고 하면서, 매우 슬퍼 창자가 끊어질 듯했다고 하였다. 李秉淳이 이치로써 마음을 달래는 방도에 있어 과연 자신이 이전에 보냈던 위문편지에서 언급한 내용을 상투적인 말로 치부하지 않고 잘 살펴서 유념하고 있는지 물었다. 殷叟(金熙質)가 중간에 여러 차례 위독한 상황을 치르고 근래 약효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浮氣가 아직 그대로이고 餘症도 오락가락하여 현재 날마다 약물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靑皮가 부족하여 계속적으로 사용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淸安縣이 비록 小邑이기는 하나 畿湖와 가깝고, 마련하는 데 있어 官力이 私力보다는 나을 듯 하다고 하면서, 3, 4냥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官次에 구하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지만 생사가 달린 일이기에 부탁드린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5년 김희분(金熙奮) 서간(書簡)

省式。前月唁狀。其已達未。卽日春
和。
視篆服履云何。衙眷亦皆穩
相否。比聞小槥逾嶺。夜來心緖。令人
斷腸。理遣之道。果不以前書所達
寘之唁人常談。而有所省念否。戚從。
向來頰瘇首尾四十餘日。而後近
得回蘇。殷叟所患。中間累經危
境。邇來不無藥效。而浮氣尙自
如。餘症又多往復。方日事刀圭。而近局
靑皮俱乏。無路係用。貴邑雖小。猶近
畿湖。官力似勝於私力。倘以三四兩俯
惠。則生光大矣。求覓官次。實愧素心。而
事關生死。情在尊我。敢此仰煩。可
小諒否。餘。病倩。不備。伏惟
服下察。謹候狀。
乙亥 三月 初四日。戚從 金熙奮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