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순조 15) 2월 22일에 芝園 姜世綸(1761~1842)이 喪事 등과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5년(순조 15) 2월 22일에 芝園 姜世綸(1761~1842)이 喪事 등과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3년이 지나도록 격조하여 李秉淳에 대한 그리움이 깊었는데 방금 公敍(兢菴 姜世揆)가 돌아온 편으로 李秉淳의 편지를 받게 되니 편지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다만 지난번에 風便으로 村中의 悲報를 듣고서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편지 내용을 읽고 이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니 기가 막힌다고 하였다. 李秉淳 집안에 요절한 사람이 있게 된 것에 대해 하늘이 어질고 착한 이를 보우하지 않음에 당혹감을 표하였다. 또한 李秉淳이 슬기롭게 견뎌 내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자신의 근심은 잠시도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李秉淳이 이 시기에 손자를 잃은 변고와 관련된 것이다. 이어, 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의 안부를 묻고 현재 民事가 비록 嶺南에 비해 湖西가 덜하다고는 하나 李秉淳이 춘궁기에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로 심력을 많이 소모하고 있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姜世綸 자신은 仲嫂의 喪으로 인해 슬픈 감회가 더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전염병과 흉년으로 인한 생활상의 어려움 등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였다. 또한 李秉淳이 보내준 여러 가지 物種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돌아온 公敍에게서 李秉淳이 튼튼한 말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아울러 전하였다. 끝으로, 膩燭(기름초)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추신에서는, 어제 朝報에서 說書 자리가 났다는 사실을 보았는데 그 후임은 義卿이 차례가 되었으므로 이미 그가 說書에 제수되었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松茂柏悅의 마음을 전하였다. 여기서 義卿은 樊庵 李同淳인데,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과연 그는 이해 2월 17일에 說書에 임명되었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