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순조 15) 4월 1일에 金命昊가 慘慽의 변고에 대해 위문하고 전염병 상황을 물어보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5년(순조 15) 4월 1일에 金命昊가 慘慽의 변고에 대해 위문하고 전염병 상황을 물어보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命昊는 본관이 善山, 자가 穉明으로, 七巖 金夢華의 손자이자 金慶久의 아들이다. 李秉淳이 金夢華의 사위이므로, 金命昊는 李秉淳에게 처조카가 된다.
먼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식을 접하기 어려운 데 대해 아쉬운 마음을 표하고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李秉淳은 이 당시 淸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또 지난번 慘慽에 관한 소식이 과연 꿈인지 사실인지 반문하고, 침통한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의 형수이자 李秉淳의 며느리인 義城金氏의 슬픈 심경은 말하지 않아도 생각할 수 있겠다고 하였으며, 慈念이 독실한 李秉淳이 어찌 차마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편지의 이 내용으로 보아, 李秉淳이 이 시기에 손자를 잃었던 것으로 보인다. 金命昊는 어머니와 자신이 병을 앓으며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면서 悶迫한 심정을 이루 다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하였다. 더구나 전염병 기운이 육박하여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므로 어버이를 모시고 있는 처지에서 더욱 悶迫하다고 하였다. 특히 금년에는 輪症이 어디에나 창궐하여 부음이 날마다 이른다고 하며 좌불안석의 상황이라고 하고, 淸安의 상황은 어떠한지 물었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