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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윤광렬(尹匡烈)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5.0000-20150630.062525700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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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윤광렬, 이병순
작성시기 1815
형태사항 크기: 35.4 X 44.1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5년 윤광렬(尹匡烈) 서간(書簡)
1815년 6월 7일에 윤광렬이병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장마철에 이병순은 평안한지, 보리농사 작황이 흉작은 면했는지, 세납은 어떻게 거둬들이는지, 언제 장송(裝送)하는지를 묻고, 또 가뭄 끝에 내린 단비가 흡족하여 백성의 근심이 조금은 해소될 것 같다고 하였다. 한편, 자신은 봄, 여름을 지나면서 집안에 우환이 계속 발생하고, 더욱이 양식마저 떨어져 근근이 버티는 실정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이병순의 경우 수령 녹봉이 박하지만, 자신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으니 수령 자리가 좋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더욱 실감난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효심

상세정보

1815년 6월 7일, 尹匡烈이 안부를 묻고 흉년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5년(순조 15) 6월 7일에 尹匡烈이 안부를 묻고 흉년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봄에 자신이 邸吏 편에 써서 부친 위문편지를 李秉淳이 받아 보았을 줄로 생각되는데 답장이 없으니 李秉淳이 붓을 들어 편지를 쓰는 데에 의욕이 없음을 알았다고 하였다. 어느 날 淸州牧使를 만나서 李秉淳이 근래 평안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조금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 근래 장마철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평안하고 보리농사 작황이 과연 흉년은 면하였는지 물었다. 가뭄 끝에 내린 단비가 흡족한 듯하므로 앞으로 백성들의 근심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듯하다고 하였다. 현재 稅納은 어떻게 거두어들이고 있는지, 또 언제쯤 裝送하는지 물었다. 官衙에 같이 있는 온 집안 식구들도 근래 모두 평안하며 負債를 다 상환하였는지도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를 모시면서 그럭저럭 평안하게 지내고 있으나 봄과 여름 들어 온 집안 식구들의 우환거리가 없어지는 때가 없고 양식이 떨어지기까지 하여 근근이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흉년은 처음 있는 일이라서 편지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李秉淳의 경우 수령 녹봉이 비록 박하기는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은 당하지 않을 것이니 수령 자리가 귀하고도 좋다는 것을 오늘날 더욱 실감하고 있다고 하였다. 李秉淳의 조카가 계속해서 곁에 있으면서 평안한지 물었다. 끝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답장을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5년 윤광렬(尹匡烈) 서간(書簡)

省式。春間慰書。修付邸便。想
入照。而絶然阻信。固知其
無意於把筆爲書。而種種瞻
仰。自不能已。且伏見淸牧。轉探
近節。得平安報。稍慰阻
悵。不審近日潦暑
政候動止萬衛。麥事果免歉。
而旱餘甘雨。似必普洽。來頭
民憂。似必少紓。目下稅納。何
以收殺。那間裝送耶。仰念
渾衙諸節。近則俱安。而債
負了償否。少弟。侍狀粗安。
而春夏來渾室憂冗無霽
時。兼之屢空。僅僅支過。而捱過百
餘日後。始將見新
谷。恐難及見。如此
變年歉愁。
殆振古所
無。書不能
盡言。而如
執事。官雖
薄。不見此
等狀。今日尤
覺太守
之貴且好
也。賢咸
連在傍平
善否。馳溸
馳溸。爲探近
候。玆付邸
便。幸從近
賜答。以示近日
平安節。如何。
姑留。不備狀式。
乙亥 六月 初七日。少弟朞服人 匡烈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