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15년 노면병(盧勉秉)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5.0000-20150630.062525700337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노면병, 이병순
작성시기 1815
형태사항 크기: 26.5 X 48.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5년 노면병(盧勉秉) 서간(書簡)
1815년 8월 9일에 노면병(盧勉秉)이병순(李秉淳)이 쓴 편지에 김성태(金聖泰) 집안의 장사(葬事)와 관련하여 태지(胎紙)를 함께 보내었다. 태지에 김성태가 청한 내용을 들어주길 바라며 자신의 형이 조만간 방문할 것임을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15년(순조 15) 8월 9일에 盧勉秉이 葬事와 관련하여 金聖泰의 청탁 편지를 대신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5년(순조 15) 8월 9일에 盧勉秉이 葬事와 관련하여 金聖泰의 청탁 편지를 대신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래 서늘한 기운이 생겨나니 정사를 살피고 있는 李秉淳가 건승하고 民生 문제가 이로부터 해결될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안도감을 전하였다. 盧勉秉 자신은 한결같이 병으로 쇠잔하다고 하였다. 盧勉秉은 이 편지에 더해진 胎紙가 同鄕의 參奉 金聖泰의 편지라고 하면서, 金聖泰는 忠庵 先生(文簡公 金淨)의 宗孫이라고 소개하였다. 그 至親 집안의 葬事와 관련하여 이렇게 자신을 통하여 李秉淳에게 胎紙로 청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李秉淳가 그 편지를 본다면 盧勉秉 자신 집안뿐만 아니라 李秉淳 집안과도 世分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盧勉秉은 胎紙에서 金聖泰가 청한 내용을 각별히 들어줘서 葬事에 충당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하였다. 끝으로, 자신의 家兄이 조만간 한 번 찾아가 인사를 드릴 것이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마침 다른 사람의 집에 앉아 대략 이 편지를 썼기 때문에 미처 李秉淳의 咸氏에게는 편지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안타깝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5년 노면병(盧勉秉) 서간(書簡)

近日凉生。伏惟
政體度萬衛。民事從此釋
憂。爲之伏慰萬萬。下生。一是
病殘耳。就告此胎札。以同鄕
世友金參奉聖泰書。而乃忠庵先生
宗孫也。以其至親家葬事。有
關于治下。故若是轉請。要
此書告。覽其本書。則可知
其非但相好于生家。且有世分于
執事宅。且士夫家。雖甚貧
寓。有異於他。則伏望
另施所請。趁期發令。俾完
大事。未知若何。如此等告。固知煩
屑。然至若此友。不得已冒告。餘萬。
家兄從近當一進拜。姑此不備禮。
乙亥 八月 初九。下生 盧勉秉 再拜。

適坐人家略草。故未及修咸氏兄。可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