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순조 15) 8월 9일에 盧勉秉이 葬事와 관련하여 金聖泰의 청탁 편지를 대신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5년(순조 15) 8월 9일에 盧勉秉이 葬事와 관련하여 金聖泰의 청탁 편지를 대신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래 서늘한 기운이 생겨나니 정사를 살피고 있는 李秉淳가 건승하고 民生 문제가 이로부터 해결될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안도감을 전하였다. 盧勉秉 자신은 한결같이 병으로 쇠잔하다고 하였다. 盧勉秉은 이 편지에 더해진 胎紙가 同鄕의 參奉 金聖泰의 편지라고 하면서, 金聖泰는 忠庵 先生(文簡公 金淨)의 宗孫이라고 소개하였다. 그 至親 집안의 葬事와 관련하여 이렇게 자신을 통하여 李秉淳에게 胎紙로 청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李秉淳가 그 편지를 본다면 盧勉秉 자신 집안뿐만 아니라 李秉淳 집안과도 世分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盧勉秉은 胎紙에서 金聖泰가 청한 내용을 각별히 들어줘서 葬事에 충당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하였다. 끝으로, 자신의 家兄이 조만간 한 번 찾아가 인사를 드릴 것이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마침 다른 사람의 집에 앉아 대략 이 편지를 썼기 때문에 미처 李秉淳의 咸氏에게는 편지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안타깝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