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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정원선(鄭元善)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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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원선,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4
형태사항 크기: 24.2 X 67.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4년 정원선(鄭元善) 서간(書簡)
1814년(순조 14) 1월 26일에 정원선(鄭元善)이 문의(文義)의 신응모(申應模)가 과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알선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병순이 혹 차비원(差備員)을 맡게 되어 알선할 방도가 있으면 반드시 각별히 살펴봐 달라고 당부하였다. 또 그와 서로 만나게 되거든 반드시 친하게 대해 주고 모든 일을 상의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14년(순조 14) 1월 26일에 鄭元善이 文義의 申應模가 科擧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알선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4년(순조 14) 1월 26일에 鄭元善이 文義의 申應模가 科擧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알선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李秉淳이 수령으로 제수되어 남쪽으로 부임해 간 뒤로 소식을 받지 못해 서글피 생각하는 마음이 컸다고 하였다. 이어 봄추위가 아직 성한 이때에 부임한 뒤로 수령 정사를 살피고 있는 李秉淳의 기거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災年에 형편이 좋지 못한 고을에 새로 부임하여 모든 상황이 마음을 괴롭게 하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鄭元善 자신은 객지에서 지내는 상황이 예전과 같은데, 來慶 兄이 갑자기 臺職으로 移拜되었다가 바로 그 다음날 체직되어 남쪽으로 돌아갔기에 泮村에서 함께 있을 사람이 마침내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매우 서글픈 마음이라고 하였다. 來慶 兄이 돌아간 뒤로 자신은 소식을 받을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李秉淳 쪽에서 소식을 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또 文義의 申應模는 본래 知舊 가운데 名下士인데 어느덧 오십 먹은 窮儒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가 姻親의 권유로 장차 春圍에 응시할 것이라고 하면서, 湖西 左道의 試邑은 어디로 정해졌는지 물었다. 李秉淳이 혹 差備員을 맡게 되어 알선할 방도가 있으면 반드시 각별히 살펴봐 달라고 당부하였다. 또 그와 서로 만나게 되거든 반드시 친하게 대해 주고 모든 일을 상의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이 부탁 편지를 전해 주는 友도 잘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4년 정원선(鄭元善) 서간(書簡)

謹拜上狀。

五馬南後。聲息漠然。
悵想之懷。何可勝喩。春寒
猶峭。不審
美赴後視篆起居。若
何。災年薄邑。新莅凡
百。無惱心之端耶。不
任懸仰之至。少弟。客狀
猶夫前日。而來慶兄忽移
臺職。卽遞翌日。治任南
歸。泮中遂無相從之
處。此懷悵黯。當復如何。
鄕使其已送還。而德敏札
或付來耶。自兄歸後。
自此無種種承信之道。尤
以爲齾。幸望自其處。隨便
相通。以爲連信之道。如何。就
煩。文義申友應模。自是
知舊中名下士。而遽作五
十窮儒。爲姻親力勸。將赴
春圍。未知湖左試邑定於
何處。而執事或當差備。
其從中斡旋之道。必
另念毋汎。如何。如或相逢。必
當一見如舊。凡事相對爛商。
似尤好矣。餘。方自直所歸。而
有臨發之便。忙甚。不備狀禮。
甲戌 元月 卄六。少弟 元善 拜。

此托。友便付送。登照時。卽爲迎接之面晤外。亦爲不泛間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