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순조 14) 7월 3일에 李元延이 科擧 응시 과정에서 발생한 빚을 갚는 일과 관련하여 30냥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4년(순조 14) 7월 3일에 李元延이 科擧 응시 과정에서 발생한 빚을 갚는 일과 관련하여 30냥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元延은 본관이 延安으로, 1813년(순조 13)에 增廣 文科에 급제하였다. 그의 부친은 李之受인데, 李之受는 李秉淳의 조부인 李世述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李秉淳에게 李之受는 고모부가 되고, 그의 아들 李載延은 고종사촌이 된다.
李元延은 지난달 24일에 있었던 政事에서 자신이 成均館 관원의 首望에 擬望되었다가 正言에 通望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다만 전에 없던 災年을 만난 상황에서 科擧 응시 과정에 진 빚을 아직 다 갚지 못했다고 하였다. 서울에 들어온 뒤로 빚을 갚으라는 독촉이 심한 상황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30냥을 모쪼록 변통해서 보내 주면 수년 내로 자신이 갚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수령인 李秉淳이 일반 사람보다는 형편이 나을 것이기에 이렇게 부탁한다고 하였으며, 이달 열흘 전에 인편으로 부쳐 보내달라고 당부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