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순조 14) 5월 21일에 金熙敎가 근황을 묻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4년(순조 14) 5월 21일에 金熙敎가 근황을 묻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熙敎는 본관이 義城으로, 一枝窩 金宅東의 아들이다. 그의 형인 海隱 金熙成의 딸 義城金氏가 李秉淳의 아들인 李彙文과 혼인하였으므로, 그와 李秉淳은 戚分이 있다.
먼저, 지난달에 庶弟가 淸安縣에서 돌아와 李秉淳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고 하면서 비록 李秉淳의 병이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두려웠다고 하였다. 그 후로 많은 날이 지났는데 부임하느라 생긴 旅毒이 이미 모두 없어졌고 수령 정사를 행하는 李秉淳이 건승한지 안부를 물었다. 또한 季氏(李性淳)가 지난달에 앓던 병도 이미 완쾌되었는지 물었다. 李秉淳이 獄囚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는데 觀察使(趙貞喆)가 改遞되고 本事가 마무리될 기약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이는 당시 淸安縣의 殺獄 罪人인 車八用이 脫獄한 사건과 관련된 언급으로 보인다. 金熙敎 자신은 더욱 심하게 노쇠하고 무기력해져서 床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맏형수(李秉淳의 査夫人)의 기력이 나날이 점점 다해가고 있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으므로 근심스런 마음이 크다고 하였다. 빈집에 외로이 기거하고 있는 姪女(李秉淳의 며느리 義城金氏)의 상황에 대해 그녀의 근심스런 마음을 알 만하겠다고 하면서, 매우 가련하다고 하였다. 이는 義城金氏가 어린 나이에 寡婦가 된 데 대한 언급이다. 늘그막에 수령의 직임을 수행하는 것은 자연 心神을 수고롭게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을 마음에 두어서 몸조리에 방해가 되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