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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홍순호(洪醇浩)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4.4483-20150630.0625257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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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홍순호, 이병순
작성지역 충청남도 당진군
작성시기 1814
형태사항 크기: 29 X 40.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4년 홍순호(洪醇浩) 서간(書簡)
1814년 11월 5일에 홍순호(洪醇浩)가 집안사람인 홍희모(洪喜模)가 소송에서 이길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갑사(岬寺)에 있을 때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서 수령으로 지내고 있는 안부가 편안한 것을 알게되어 위안이 되었지만, 재해가 들어서 어찌 마음이 괴롭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자신은 군수로 승진하여 영광스럽긴 하지만 흉년으로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하였다. 이어 상대방이 수령으로 있는 청안현(淸安縣)에 거주하는 홍희모가 집안사람이라고 하면서, 산소 관련 소송에서 처결을 받았지만 지체되고 있으니 상대방이 직접 처결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14년 11월 5일, 洪醇浩洪喜模의 山訟에 관해 청탁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4년(순조 14) 11월 5일에 洪醇浩가 至親인 洪喜模가 山訟에서 勝訴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岬寺에 있을 때 李秉淳의 편지를 받고서 추위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이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재해가 든 해 민생의 어려움은 어찌 마음으로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洪醇浩 자신은 졸지에 郡守로 승진하게 되니 영광스럽기는 하지만 흉년으로 폐허가 된 땅의 모든 여건이 크게 머리를 아프게 한다고 하면서, 필경 수령으로서 죄를 짓게 될 밖에 다른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하였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원래 文義縣令이던 洪醇浩沔川郡守 徐有儞와 자리를 바꾸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한 말로 보인다. 洪醇浩李秉淳이 수령으로 있는 淸安縣의 西面 慕巖里에 거주하는 洪喜模가 자신 집안의 至親이라고 하였다. 山訟에 대해 ‘監營에 呈訴하여 決給 받으라’는 뎨김을 받았으나 아직까지 지체되고 있다고 하면서, 매우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李秉淳이 즉시 親審하여 특별히 決給해 달라고 청탁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胎紙로 적어 올린다고 하였으며, 끝으로 경계가 접한 곳의 수령으로 서로 의지하다가 이제 멀리 떠나가게 되니 한층 섭섭하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4년 홍순호(洪醇浩) 서간(書簡)

在岬寺時。得拜
委敎。備審寒冱
政中起居衛相。仰慰
不任區區。災年民憂。安
得不惱心也。記下。猝地陞
郡。榮則榮矣。赤地凡節。
果政大頭痛。畢竟得罪
之外。無他策。奈何奈何。治
西面慕巖里洪生喜
。卽鄙家至親也。以山
訟事。有呈營決給之題。
而尙此遷延。極爲悶寃
云。幸卽親審。從公特
決。千萬切仰耳。公
方臨行。忽擾小緣。極不
成說。而第玆胎呈。
俯諒另圖之。如何如何。接
壤依遣。今方遠離。尤
不勝忡忡。餘。姑不備儀。
甲戌 至月 初五日。記下 洪醇浩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