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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이휘빈(李彙斌)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3.4793-20150630.0625257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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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휘빈,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작성시기 1813
형태사항 크기: 23 X 3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3년 이휘빈(李彙斌) 서간(書簡)
1813년 2월 12일에 이휘빈(李彙斌)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전하고 서울로 올라가는지 일정을 물어보기 위해서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봄추위 중 상대방 형제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객지에서 별 탈 없이 지내는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다만 집안 소식을 자주 듣지 못하고, 주인집에 우환이 있어서 매우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이어 경석(景錫)이 지난번에 아들 와(瓦)를 잃어서 참혹스럽지만 경(璋)은 마마가 진정되어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끝으로, 언제 서울로 출발하는지를 묻고 자신이 그때 뵙지 못할 듯하여 매우 섭섭하다고 하면서, 먼 길을 무사히 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13년 2월 12일, 李彙斌이 근황을 전하고 상경하는 일정을 묻기 위해서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3년(순조 13) 2월 12일에 李彙斌이 객지에서 지내고 있는 자신의 근황 및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전하고 언제쯤 서울로 올라가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건대, 李秉淳監察로 재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1812년(순조 12) 12월 27일에 監察로 임명되었다. 李秉淳에게 族侄이 되는 李彙斌은 당시 海平에 머물고 있었다. 먼저, 歲初에 잠시 뵙고 다시 모시지 못하고 이곳에 오게 되니 지금까지도 섭섭했다고 하였다. 봄추위가 아직 심한 이때 李秉淳 형제가 건강이 상하지 않고 眷率도 고루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객지에서 지내는 상황이 예전과 같고 어린 아들도 별 탈 없으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집안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없으니 애가 타고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또 主家의 우환이 날마다 사람을 괴롭히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景錫이 지난번에 瓦 兒를 잃었으니 참혹하고 참혹하기는 하지만 璋 兒의 마마가 진정되어 가니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李秉淳이 서울로 언제쯤 출발하는지 묻고, 그때 자신이 알현하지 못할 듯하니 한층 섭섭한 마음 간절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머나먼 길을 무사히 가실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3년 이휘빈(李彙斌) 서간(書簡)

監察叔主 靜座下 執事。
海平留 族侄 上候書。 省式謹封。
省式。歲初暫爲拜候。仍未
更得穩侍而來此。下懷伏
悵。迨今縻定。春寒尙峭。
伏未審此時
棣牀體度俾無損節。
眷節勻宜否。種種伏慕區區
無任下忱之至。族侄。客狀依
昔。穉兒亦免恙。私幸。而庭
音間闊。焦悶奈何。且主家憂
故。式日惱人。色色愁悶。如何
盡達。景錫嚮見瓦兒之慽。
慘矣慘矣。而惟以璋兒之痘憂。
証勢頗順爲慰耳。京洛
行次。當在那間也。其時似未得
伏謁。尤伏切悵歎而已。此從意
外。握逢殊方。得此喜事。欣
割沒量。而旋卽作別。薪悵當
如何哉。餘。伏祝半千長程
行李萬安。不備。伏惟
下察。上候書。
癸酉 二月 十二日。族侄 彙斌 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