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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김희교(金熙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3.4717-20150630.062525700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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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희교,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3
형태사항 크기: 29.1 X 52.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3년 김희교(金熙敎) 서간(書簡)
1813년 1월 19일에 김희교가 치제(致祭) 행사에 꼭 참석해 달라고 청하기 위해 이병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연이어 상을 당한 상대방을 위로하고 있다. 이어서 상대방의 6품 승진을 축하하고 자신은 몸이 좋지 않다고 하고 있다. 끝으로 자신의 종숙집안에 치제가 내달쯤 있으니 당신께서 참석해 달라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13년(순조 13) 1월 19일에 金熙敎가 致祭 행사에 꼭 참석해 달라고 청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3년(순조 13) 1월 19일에 金熙敎가 致祭 행사에 꼭 참석해 달라고 청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熙敎는 본관이 義城으로, 一枝窩 金宅東의 아들이다. 그의 형인 海隱 金熙成의 딸 義城金氏李秉淳의 아들인 李彙文과 혼인하였으므로, 그와 李秉淳은 戚分이 있다.
먼저, 李秉淳이 말미를 받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기쁘게 만나고 싶었으나 형편상 그러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추위를 무릅쓰고 여행한 李秉淳의 건강이 상하지 않았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위안이 되면서도 안부가 궁금하다고 하였다. 다만 李秉淳이 중첩되는 喪事를 당하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마치 鶴을 타고 오랜 세월 뒤에 고향으로 돌아온 丁令威의 감회가 깊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李秉淳이 6품직에 오르리라는 것을 본래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였으며, 李秉淳이 곧장 詞訟 官衙로 遷轉된 것에 대해 매우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또 이제부터 노년에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수고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매우 축하드린다고 하였다. 金熙敎 자신은 쇠약한 건강 상태가 더욱 심해지고 있고 전에 없던 추위를 당하여 장기간 이불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고민스러운 일 또한 많다고 하였다. 李秉淳이 다시 언제 출근하게 되는지 물었다. 자신의 從叔 집안의 致祭가 내달쯤에 있을 듯 하다고 하면서, 그때 李秉淳이 왕림해 준다면 몇 년 동안 갖지 못하던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3년 김희교(金熙敎) 서간(書簡)

卽聞
由旆言旋。極欲馳進
欣握。而其勢末由。徒切翹
神而已。卽惟
冒寒撼頓。起居無所損。
慰溯慰溯。但聞功慽荐疊。
想多有遼鶴之懷。爲
之悲念。陞六固已料之。
而直遷詞訟。甚可幸也。
自此可以免衰年棲屑
之勞。多賀多賀。戚。衰相轉
深。又當無前之寒。長在衾
褥中度了。憐悶之中。
亦多有擾惱之端。無足奉
聞。還仕在於何間。從叔家
致祭。姑未定日。而似在來月間。伊時
若得賁然。則可接積歲面目。預
企預企。峽寓姑未撤還。爲過歲來留
故。第聞有去
便。倩手姑此。
不備。
癸酉 正月 十九日。戚 熙敎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