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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이태순(李泰淳)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2.4833-20150630.06252570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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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태순,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작성시기 1812
형태사항 크기: 23.5 X 3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2년 이태순(李泰淳) 서간(書簡)
1812년 2월 15일에 이태순(李泰淳)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오랫동안 소식이 막혀 그리움이 간절했었는데, 반촌(泮村) 주인 편으로 상대방의 편지를 받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로 지내고 있는 안부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 공무가 한결같이 바쁜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홍경래(洪景來)의 난(亂)이 거의 토벌된 것과 류 학사(柳學士)가 체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였다. 이외에도 자신의 큰아들이 과거시험에 응시할 것이라는 소식과 官庫의 형편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상황을 말하고, 추신으로 편지지 40폭을 올린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12년 2월 15일, 李泰淳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2년(순조 12) 2월 15일에 草草庵 李泰淳(1759~1840)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해가 바뀌고 달도 바뀌었는데 소식이 오랫동안 격조하니 그리움만 간절했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泮主 편으로 李秉淳의 편지를 받아 바삐 읽으니 종이가 닳는 줄도 몰랐다고 하였다. 또 편지를 읽고서 義禁府都事로 直宿하고 있는 李秉淳이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경하했다고 하였다. 李泰淳 자신은 늙은 처를 떠나보내고 텅 빈 관아에 우두커니 앉아 지내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당시 李泰淳梁山郡守로 재직하고 있었다. 또 분주한 공무는 한결같이 예전과 같아서 고민스럽다고 하였다. 洪景來의 반란 사건에 대하여 근래 朝報를 보건대 거의 모조리 토벌되었다고 하니, 국가의 다행스런 일이라고 하였다. 또 柳 學士(鶴栖 柳台佐로 보임)가 이미 本職에서 체차되었으니 아마도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그 외의 벗들은 누가 서울에 머물고 있고 누가 돌아갔는지 들은 바가 없기에 답답하다고 하였다. 자신의 큰아들이 庭科에 응시할 것이라고 하면서, 관직에 있는 자가 빈한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으나 官庫의 상황이 점점 형편없어지고 있으니 도리어 우습고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劣簡 40幅을 올린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2년 이태순(李泰淳) 서간(書簡)

歲換月改。聲息久阻。
懷仰徒勤。泮主便。伏承
下問書。忙手奉讀。不覺生
毛。矧審
直中起居候萬珍。何等仰
賀。從弟。旣送老妻。塊坐
空衙。而所謂奔走之役。一
嚮依舊。悶苦悶苦。西賊事。
近見朝紙。幾盡就平。
邦國之幸耳。柳學士已遞
本職。想必還鄕。而其
外僉益。誰留誰歸
無聞。可菀。伯兒當赴觀
庭科。而在官者言貧。
已知不美。弟不欲向人
說道。而所
謂官庫
漸見沒樣。
還可笑歎。
奈何奈何。圖
差之敎似
然。而自有
井間。且無
目今擺脫
資備之
勢。亦且奈何。
泮主留以後
期。未免空還。
從事可悶。
餘。忙不備萬一。
壬申 二月 望日。從弟 泰淳 拜上。
劣簡四十幅。仰
呈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