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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김희교(金熙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2.4717-20150630.06252570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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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희교,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2
형태사항 크기: 28.4 X 43.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2년 김희교(金熙敎) 서간(書簡)
1812년 10월 4일에 김희교가 안부를 교환하고 상대 집안의 여러 상에 대해 위로하기 위해 이병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당신이 보내주신 부채에 감사하고 6품 승진이 이루어질 것을 축하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과 여러 형제들의 안부를 전하였다. 또한 주위에 발생한 여러 친척들의 상 소식을 전하고 당신께서 안부편지를 보냈는지를 묻고 있다. 끝으로 자신의 아들과 종손들이 과거를 보러 갔으니 잘 부탁한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12년(순조 12) 10월 4일에 金熙敎가 안부를 교환하고 상대 집안의 여러 喪事에 대해 위로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2년(순조 12) 10월 4일에 金熙敎가 안부를 교환하고 상대 집안의 여러 喪事에 대해 위로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熙敎는 본관이 義城으로, 一枝窩 金宅東의 아들이다. 그의 형인 海隱 金熙成의 딸 義城金氏李秉淳의 아들인 李彙文과 혼인하였으므로, 그와 李秉淳은 戚分이 있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건대, 당시 李秉淳은 尙瑞院 관원으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尙瑞院副直長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먼저, 서쪽과 남쪽으로 멀리 헤어진 뒤로 몇 년 동안이나 격조하여 때때로 그리워하며 서글픈 마음만 간절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李秉淳이 멀리서 편지를 보내 주고 겸하여 부채까지 보내 주었다고 하면서, 위로되고 감사한 마음이 매우 컸다고 하였다. 특히 李秉淳이 6품 승진이 머지않은 데 대해 기쁜 마음을 전하였다. 金熙敎 자신은 衰病이 점점 심해져서 식욕이 부진하고 정신과 근력이 날로 쇠약해지니 죽을 날이 가까워졌음을 스스로 알겠다고 하였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孤孫 형제가 無病하고 次孫이 痘症을 순조롭게 치렀으니 이것이 크게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라고 하였다. 과부의 신세로 養子를 데리고 외롭게 빈집을 지키고 있을 李秉淳의 며느리를 생각해 보건대 이것이 객지에 있는 李秉淳의 잊기 어려운 근심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앞으로는 머지않아 단란하게 모일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다만 李秉淳 집안에 慘慽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江亭의 伯哥가 또 요절한 데 대해 그 사람됨이 아까울 뿐만 아니라 팔순 偏親을 모시고 있던 처지에서 그 참혹한 심경을 차마 얘기할 수도 없는 지경이라고 하였다. 또 幼般 戚從이 가까운 이웃에 살아 날마다 어울리면서 무료한 회포를 위로해 주었는데 뜻밖에 그 내외가 일시에 요절하여 이미 葬禮를 지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애통하다고 하였다. 더구나 伯恭(鄭必良) 妹兄이 죽은 지 벌써 3년이 되었다고 하면서, 참담한 심경을 표하였다. 그런데 생질의 말을 듣건대 李秉淳이 아직까지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고 하니, 친척에게 후한 성품을 지닌 李秉淳이 어찌 이렇게 할 리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이는 필시 편지가 중간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서 그럴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의 아들과 從孫들이 科擧를 보러 갔다고 하면서, 잘 지도하여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2년 김희교(金熙敎) 서간(書簡)

瑞院直邸 執事。
桃寓戚從 謝狀。【謹封】
邈矣西南。積年阻閡。有時馳想。徒
切悵懷而已。迺者。承拜
遠賜惠書。兼以一陣淸風。披緘奉
讀。如得相對色笑。吐盡積懷。其爲慰
感當如何哉。居然過了夏秋。冬序已
屆。伏惟
仕履起居。一向神護。幸得捷徑陞
六當頭。衰年棲屑之勞。脫出不遠。尤
庸慰賀萬萬。戚從。衰病轉深。食欲
專却。精神筋力。日漸凘鑠。自知符
到在前。亦且奈何。唯幸孤孫兄弟無
病。次孫順經痘症。此爲大可慰心處也。
回想貴宅孀婦挈螟兒孤守空
閣。此必爲客中一端難忘之憂。而自
此以後。可得匪久團聚。是爲幸也。但德
門喪慘。去益甚。江亭伯哥。又爲奄忽。
不但人器可惜。八耋偏親之下。慘毒情地。不忍言不忍言。幼
般戚從。居在近隣。逐日相從。頓慰窮山無聊之懷。意
外。內外一時奄忽。已爲葬之厚土。痛悼何言。況伯恭妹兄。
三霜已到。種種光景。無可言者。聞甥兒言。則左右尙
無紙問云。以
左右篤厚親戚
之性。豈有此事。必
有浮沈而然矣。心
切怪訝。有此尾
陳耳。迷豚及從
孫輩作此不緊之
行。入場凡節。須
使指揮。無至顚
錯。如何。憑其行。
玆修謝儀。詳在
兒輩口達。不備。伏惟
下照。
壬申 十月 初四日。戚從 熙敎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