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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2.0000-20150630.06252570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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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범휴, 이병순
작성시기 1812
형태사항 크기: 37.7 X 50.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2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1812년(순조 12) 9월 25일에 호곡(壺谷) 류범휴(柳範休)가 조상에 관한 일로 한양에 올라가는 사람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범휴는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병순에게 자신의 안부와 그의 가족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병순에게 조상의 일로 한양에 가는 김 생(金生)을 잘 부탁한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12년(순조 12) 9월 25일에 壺谷 柳範休(1744~1823)가 조상에 관한 일로 한양에 올라가는 사람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2년(순조 12) 9월 25일에 壺谷 柳範休(1744~1823)가 조상에 관한 일로 한양에 올라가는 사람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李秉淳가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서울에 머물게 된 뒤부터 만나기가 더욱 쉽지 않게 되어 아쉬운 마음만 쌓였다고 하였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 시기에 李秉淳尙瑞院 副直長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 객지에서 벼슬살이하고 있는 李秉淳의 체후가 철따라 神의 가호를 받고 있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柳範休 자신은 한결같이 쇠잔하다고 하였으며, 李秉淳의 本宅의 여러 사람들이 평안하여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李秉淳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떠난 聞韶의 金 生은 조상에 관한 일로 한양에 들어가는데 제반 사항에 대해서 여쭈고 의논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고 하면서, 李秉淳에게 일에 따라 그를 잘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또한 모레 高山書院에 관한 일로 禮安鄕校에서 모임이 열리는데 李秉淳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으므로 會席에 한 사람이 적다는 한탄이 깊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2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公筮仕留京。奉際尤未易。第積瞻
悵。伏惟秋闌。
旅中仕候起居。對序神衛。戚末。一味癃
殘。無足仰浼
高聽。本宅大小諸位平安。可以慰
旅中鄕思。此去聞韶金生。以爲先事入洛。
而寒蹤生受凡百。無稟議處。望隨事
頤揮。俾免顚躓。如何。再明以高山事。
有一會于貴縣鄕校。而
賢執事在外。會席少一之歎。深矣。萬萬。
金生臨發。忙修草草。不備。伏惟
照察。
壬申 九月 卄五日。戚末 範休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