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순조 12) 9월 25일에 壺谷 柳範休(1744~1823)가 조상에 관한 일로 한양에 올라가는 사람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2년(순조 12) 9월 25일에 壺谷 柳範休(1744~1823)가 조상에 관한 일로 한양에 올라가는 사람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李秉淳가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서울에 머물게 된 뒤부터 만나기가 더욱 쉽지 않게 되어 아쉬운 마음만 쌓였다고 하였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 시기에 李秉淳는 尙瑞院 副直長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 객지에서 벼슬살이하고 있는 李秉淳의 체후가 철따라 神의 가호를 받고 있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柳範休 자신은 한결같이 쇠잔하다고 하였으며, 李秉淳의 本宅의 여러 사람들이 평안하여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李秉淳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떠난 聞韶의 金 生은 조상에 관한 일로 한양에 들어가는데 제반 사항에 대해서 여쭈고 의논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고 하면서, 李秉淳에게 일에 따라 그를 잘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또한 모레 高山書院에 관한 일로 禮安鄕校에서 모임이 열리는데 李秉淳가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으므로 會席에 한 사람이 적다는 한탄이 깊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