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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정원선(鄭元善)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1.4717-20150630.062525700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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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원선,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1
형태사항 크기: 29.2 X 39.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1년 정원선(鄭元善) 서간(書簡)
1811년(순조 11) 2월 7일에 정원선(鄭元善)이 서울에 있는 여러 지인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래경(來卿) 형은 수령이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하였고, 경관(景寬) 형은 계속해서 옥당(玉堂)의 직함에 매여 있으니 아직 객관에 체류하고 있는지 물었고, 하양(河陽)에게서 계속적으로 소식을 받고 있는지 물었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11년(순조 11) 2월 7일에 鄭元善이 서울에 있는 여러 지인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1년(순조 11) 2월 7일에 鄭元善이 서울에 있는 여러 지인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咸鏡道에서 돌아오자마자 편지를 작성하여 胸褙와 함께 보냈음에도 아직 이병순으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혹 그것들이 중간에 유실된 것은 아닌지 한량없이 답답하다고 하였다.
이어 해가 바뀌어도 극심하게 추운 이때 서울에서 벼슬살이하고 있는 이병순의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정원선咸鏡都事를 지낸 바 있으며 당시 이병순尙衣院僉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來卿 兄(草庵 李泰淳)은 수령이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하였고, 景寬 兄(聾窩 李彦淳)은 계속해서 玉堂의 직함에 매여 있으니 아직 객관에 체류하고 있는지 물었고, 河陽에게서 계속적으로 소식을 받고 있는지 물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泰淳梁山郡守로 임명되었고 李彦淳校理로 있었으며 당시 河陽縣監은 俗隱齋 李龜星이었다.
정원선 자신은 해가 바뀐 지금까지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하였다. 다만 楓嶽山에서 얻은 餘興이 아직 가시지 않아 늦봄이 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丹山으로 출발하고 싶다고 하면서, 이 생각이 이뤄진다면 이틀 밤이면 갈 수 있는 宜仁으로 고개를 넘어 가고도 싶으나 종놈과 말에 들어가는 노자와 먹이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景寬 兄이 泮中에 확실히 있는지 모르는 관계로 따로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러한 뜻을 대신 전해 달라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1년 정원선(鄭元善) 서간(書簡)

自北歸後。卽修一候。兼送
胸褙。尙未承
惠覆。無或有洪喬之歎耶。
向菀如天。歲換寒峭
旅候起居。若何。來卿兄佩
符爲之。奇幸。景寬兄連縻
堂啣。未知尙滯旅邸。
連有安信否。種種馳想。
少弟。經冬棲屑。仍成感
冒。歲後至今。無日不吟病。
悶憐如何。第楓嶽
餘興猶未已。容俟晩
春。欲向丹山。此計若
遂。距貴鄕。信宿可到。
擬欲踰嶺。
奈僕馬資
粮之歎乏。
何哉。餘。適
因權記注
行歷過。暫
此修候。冀
獲來音耳。
不備禮。
辛未 二月 初七。少弟 元善 拜。

景寬兄未
知的在泮中。
不得各幅。雷照
爲望。
前然後作字若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