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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최운영(崔雲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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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최운영,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1
형태사항 크기: 31.6 X 45.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1년 최운영(崔雲永) 서간(書簡)
1811년 4월 17일에 최운영(崔雲永)이 근황을 주고받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계부(季父) 편에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위로되었지만, 상대방의 안부가 평안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걱정된다고 하였다. 이어 그 사이의 안부를 묻고, 별탈이 없이 지내는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또한 마을에 돌림병이 돌아서 집사람을 6일에 데려왔으며, 계부도 무사히 돌아가서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종고모의 안부 등의 소식도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11년 4월 17일, 崔雲永이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1년(순조 11) 4월 17일에 崔雲永이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장인인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崔雲永은 본관이 全州, 자가 景錫으로, 崔章羽의 아들이다. 생부는 崔鳳羽이다. 그는 李秉淳의 딸인 眞城李氏와 혼인하였다. 1827년(순조 27)에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먼저, 절하고 물러난 뒤로 李秉淳이 또 서울로 출발하여 격조하였으니 답답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季父께서 돌아오셔서 그 편에 李秉淳이 보내준 편지를 받고 위로되고 기쁜 마음이 그지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시달린 나머지 李秉淳이 평안하지 못하고 식사량도 자못 줄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편지를 받고 나서 많은 날이 흘렀는데 건강이 어떠하냐며 다시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별탈이 없이 돌아왔으며 두 노친의 환후가 이미 쾌차되었으니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촌의 돌림병이 크게 치성하여 집사람을 6일에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季父께서 뜻밖에 무사히 돌아가셨으니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였으며, 人馬가 계속해서 아주 먼 길을 다녀 피곤함이 너무 심하였으니 보기에 매우 걱정스러웠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從姑母가 아이를 데리고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1년 최운영(崔雲永) 서간(書簡)

辭退后。且發西駕。方以阻候。
爲菀。料外。季父還稅。卽伏承
下書。忙手披緘。慰喜難盡。仍
伏審
撼頓餘體候欠安。所進稍減。
且念且慮。而信后更多。而凡
節若何。伏慮區區無任遠誠。外甥。
無撓歸侍。侍候無損節。兩
老親患候。已至復常。是可喜
幸。室人之行。以其村閻之
大鴟。初六不得不率來。而非但
情理之薪悵。伏想海底戚姊
氏尤難排遣耳。季父料外。平
安返稅。喜幸。而人馬連作
數千里之行。瘦困特甚。見甚悶
然。後漢卽去。宜仁留連五六
後。卽還上爲計耳。餘。因便
暫此修候。未知
何時入覽。不備。
伏惟
下鑑。
上書。
辛未 四月 十七日。外甥 崔雲永 上書。
從姑母將兒平安。其叔主幷來住。而客
候一樣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