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년 4월 17일, 崔雲永이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1년(순조 11) 4월 17일에 崔雲永이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장인인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崔雲永은 본관이 全州, 자가 景錫으로, 崔章羽의 아들이다. 생부는 崔鳳羽이다. 그는 李秉淳의 딸인 眞城李氏와 혼인하였다. 1827년(순조 27)에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먼저, 절하고 물러난 뒤로 李秉淳이 또 서울로 출발하여 격조하였으니 답답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季父께서 돌아오셔서 그 편에 李秉淳이 보내준 편지를 받고 위로되고 기쁜 마음이 그지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시달린 나머지 李秉淳이 평안하지 못하고 식사량도 자못 줄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편지를 받고 나서 많은 날이 흘렀는데 건강이 어떠하냐며 다시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별탈이 없이 돌아왔으며 두 노친의 환후가 이미 쾌차되었으니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촌의 돌림병이 크게 치성하여 집사람을 6일에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季父께서 뜻밖에 무사히 돌아가셨으니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였으며, 人馬가 계속해서 아주 먼 길을 다녀 피곤함이 너무 심하였으니 보기에 매우 걱정스러웠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從姑母가 아이를 데리고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