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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이재연(李載延)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1.4717-20150630.0625257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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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재연,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1
형태사항 크기: 30.3 X 39.1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1년 이재연(李載延) 서간(書簡)
1811년(순조 11) 6월 18일에 이재연(李載延)이 자신의 병세와 조정의 상황 등을 전해 주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몇 달 동안이나 계속되던 설사증이 갑자기 이질(痢疾)로 악화되어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였으며, 10일부터 지금까지 주야로 허둥거려 간혹 사람의 얼굴도 분간하지 못하는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11년(순조 11) 6월 18일에 李載延이 자신의 병세와 조정의 상황 등을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1년(순조 11) 6월 18일에 李載延이 자신의 병세와 조정의 상황 등을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載延은 본관이 延安, 자가 致謙으로, 生員試에 입격하고 縣監 등의 관직을 지냈다. 그의 부친은 李之受인데, 李之受李秉淳의 조부인 李世述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李秉淳에게 李之受는 고모부가 되고, 그의 아들 李載延은 고종사촌이 된다.
먼저, 10일에 李秉淳이 떠난다는 기별을 듣고서 直所에서 나와 곧장 泮村으로 들어갔더니 李秉淳이 이미 출발했다고 하면서, 서글피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 뒤로 다시 소식을 받을 길이 없었다고 하면서, 이런 무더위에 근무하고 있는 중의 건강 상태가 어떠하고 숲속의 모기로 인한 괴로움으로 건강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안부를 물었다.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李載延은 이 당시 尙瑞院副直長으로 근무하고 있고 李秉淳尙衣院僉正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李秉淳은 아마도 외지에서 근무하고 있던 상황으로 보인다.
李載延 자신은 몇 달 동안이나 계속되던 설사증이 갑자기 痢疾로 악화되어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였으며, 10일부터 지금까지 주야로 허둥거려 간혹 사람의 얼굴도 분간하지 못하는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하였다. 浮氣가 足部에서 胸腹部까지 퍼졌는데 곁에 救護해 주는 사람도 없이 다만 약의 힘으로 지금껏 지탱하고 있다고 하였다. 오로지 고향 생각밖에는 없으나 돌아갈 수도 없다고 하였다. 이런 와중에 愼吾의 病報가 누차 이르렀는데 그간에 위기에서 벗어났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李載延 자신의 병세가 회복될 가망이 전연 없는데 집안 소식까지 이러하니, 병은 악화되고 마음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都目政事는 吏曹判書가 나오지 않아서 언제 할지 모른다고 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15일에 치러진 應製에서 金魯應의 아들(金道喜)이 급제하였다는 소식도 전하였다. 際可(俛齋 李秉運)는 현재 떠나지 않았으나 18일에는 반드시 하직 인사를 하고 출발할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李秉淳이 언제쯤 出直하는지 묻고 형제간에 먼 곳으로 나와 벼슬하면서 병이 나도 서로 부지해 주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1년 이재연(李載延) 서간(書簡)

初十日。聞駕言之奇。脫直。直入泮。
則旆已發矣。悵望空歸。其後
更無承音之路。如此溽炎
直候若何。林木間蚊蟲之苦。能不至
損愆否。種種伏溯不任。表從弟。數
月泄症。忽爲痢症。赤白復重之症。痛
勢如裂。自十日至于今。通晝夜蒼黃。
間或不分人面目。奄奄若不保朝夕。浮
氣自足部至于胸腹。傍無救護之
人。只以藥力。至今支撑。而一念。唯在首
丘。而何可得也。這中以愼吾之病。急
報屢至。其間脫危未可知。此何運厄
也。弟之病勢。萬無回頭之望。家信
又如此。病安得不添。心安得不動也。莫
非天也。亦此奈何。都政。以吏判不出。不
知何間爲之云。十五今以庚戌年謝應製。
金魯應之子爲及第云。際可
不去。而十八日必辭朝發行矣。病中
救療諸節沒策。所
謂奴與婢。垂涕而告
急。雖甚悶
迫。而以此將
死之命。何
以措手乎。
不得已告憫。
而兄主亦
何以救之
耶。何間當
出直也。從。
兄弟遠出
千里外。疾
病不得相
扶持。雖恨。
而各縻
職事。奈何。
臥草不成字。
不備上書禮。
辛未 六月 十八日。表從弟 載延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