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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이재연(李載延)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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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재연,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1
형태사항 크기: 32 X 45.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1년 이재연(李載延) 서간(書簡)
1811년(순조 11) 7월 21일에 이재연(李載延)이 도목정사(都目政事) 일정에 대해 알려 주고 말을 기일 전에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병순이 더디게 승진하는 것은 도목정사가 지체되고 있는 것에도 문제가 있으나 오래 근무한 사람보다 나중에 들어온 자가 먼저 천전하는 데 기인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달 12일에 원릉과 현릉으로 능행하기로 결정되었으니 그전에 말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11년(순조 11) 7월 21일에 李載延이 都目政事 일정에 대해 알려 주고 말을 기일 전에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1년(순조 11) 7월 21일에 李載延이 都目政事 일정에 대해 알려 주고 말을 기일 전에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載延은 본관이 延安, 자가 致謙으로, 生員試에 입격하고 縣監 등의 관직을 지냈다. 그의 부친은 李之受인데, 李之受李秉淳의 조부인 李世述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李秉淳에게 李之受는 고모부가 되고, 그의 아들 李載延은 고종사촌이 된다.
李載延李秉淳이 더디게 승진하는 것은 都目政事가 지체되고 있는 것에도 문제가 있으나 오래 근무한 사람보다 나중에 들어온 자가 먼저 遷轉하는 데 기인한 것이라고 하였다. 방금 단골리와 상의해 보니, 도목정사가 언제쯤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고 하였다.
李秉淳에게 말을 빌려 扈駕하는 것은 부득이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면서, 내달 12일에 元陵과 顯陵으로 陵幸하기로 결정되었으니 그전에 말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松峴의 終祥이 이달 24일에 있다고 하면서, 李秉淳이 下隷를 보내 조문하고자 하거든 내일이나 모레 전에 해야 主家 사람이 틈을 내어 답장할 수 있을 거라 하였다.
이어 乃城의 소식에 대해 전해 주었는데 과부가 된 며느리가 監營에 갔다고 하였으며, 올라온 殷叟가 헛수고를 면치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추신에서는, 땔감 한 바리를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1년 이재연(李載延) 서간(書簡)

日來。連承
惠書。敬審新凉。
直候諸節。第非泄非痢之症。
大損於元氣。極是悶慮事也。
弟之所患。以本病四朔彌留。中
間所用之藥。盡是治宿症之劑。近
來則朝夕絶粒。故不暇於醫藥。
至如和淸之燒酒。莫可奈何。而大
抵和淸燒酒。似爲好耳。兄主之內
陞。雖都政遷延。亦似多節者。蓋
緣於積薪之先遷於多仕者故然。
今方與骨吏相議。而都政亦不知在
何間耳。借鬣扈駕。出於不得
已。而來月十二日。定於
元陵顯陵。趁其前牽送。如何。松峴終祥。在於今
月二十四日。如欲送隸俯問。則明再明前人來。
然後主家
人。可以暇隙
答候耳。
乃城事。慘
酷之中。做
事似沒料
量。孀婦之
往營。甚無
緊矣。營意
之落落。伊誰
回心也。勢
將待時避
怨而已。在
京親知
亦可以之
挽回也。
殷叟
上來。亦未
免虛勞耳。只自憤歎而
已。餘。不備上謝之禮。
辛未 七月 卄一日。表從弟 載延 拜手。

若有委送之隷。弟方絶火之
中。兼以無薪。入直則惡奴。盡
燒家材木。漸至無餘地之境。
撤役已過月餘。所餘之材無
幾。無非切悶處也。柴一駄
惠送。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