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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이휘조(李彙朝)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1.1111-20150630.062525700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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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휘조, 이병순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1811
형태사항 크기: 21.1 X 41.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1년 이휘조(李彙朝) 서간(書簡)
1811년 8월 15일에 이휘조(李彙朝)가 인사 결과를 묻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일전에 상대방을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전하고, 객지에서 벼슬하고 있는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집안의 우환과 몸의 병으로 괴롭게 지내고 있으며, 의인(宜仁)의 본댁(本宅)이 평안하여 다행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도목정사(都目政事)의 거행 여부와 계상 숙주(溪上族叔)가 수령이 될 가망이 있는지, 친구 중에 몇이나 벼슬을 얻었는지 등을 물었다. 끝으로, 사동(社洞)에 보내는 편지를 남 상사(南上舍)에게 전하고 본가(本家)에는 전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11년 8월 15일, 李彙朝가 근황을 전하고 인사 결과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1년(순조 11) 8월 15일에 李彙朝가 근황을 전하고 인사 결과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참고로, 이 당시 李秉淳尙衣院僉正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먼저, 내려왔을 때 泮村에 들어가 보니 李秉淳이 이미 入直하고 없었고 또 어제 저녁에 우연히 順歸하는 人馬를 얻었으나 내일 새벽에 출발하기 때문에 방문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또 편지를 받아 오지 못했기에 자신의 서글픈 마음이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가을이 점점 깊어지는 이때 객지에서 벼슬하고 있는 李秉淳의 건강이 상하지 않고 귀앓이가 진즉에 완쾌되었는지 안부를 물었다. 李彙朝 자신은 半生半死의 상태로 내려와 보니 重候께서 그럭저럭 지내시고 계시나 사소한 우환이 아주 많고 또 身病까지 겹쳐 날마다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고 하면서, 현재 湯劑를 써보고는 있으나 元氣가 거듭 상한 뒤라 효과가 없을 듯하다고 하였다. 宜仁 本宅의 여러분들이 평안하다고 하니, 매우 다행이라고 하였다. 都目政事가 이미 거행되었는지, 溪上 族叔께서 수령으로 제수될 희망이 있는지도 물으면서, 자신이 고대하고 있으나 서신을 받을 길이 없으므로 답답한 마음을 형언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친구들 가운데 몇이나 初仕를 얻었는지도 물었다. 끝으로, 社洞에 보내는 편지를 南 上舍에게 보내고 本家에는 전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1년 이휘조(李彙朝) 서간(書簡)

下來時委入泮村。則已爲
入直。而且昨夕。偶得順歸
人馬。而明曉發程。故未得
晉候。又未得受書而來。
下懷伏悵。迨今靡定。
而何人能如忖度之也。
秋意漸緊。伏未審
旅履氣候。別無損節。
耳患趁卽夬復耶。種種遠
伏慕區區不任之至。族侄。半生
半死而歸。則重候姑
免諐節。而些少虞憂。
不一而足。又重之以身病。日事
惱人。方在試湯中。而元氣
積敗之餘。似無責效。以是
爲慮。宜仁本宅
僉候姑平安云。何幸何幸。
大政或已過行。而溪上族叔幾有一麾之望耶。
方在苦待中。而金玉無憑。紆鬱
難狀。初仕親舊中。幾名士
爲之也。餘聞後民下來。而旋卽復
路云。故暫此替候。不備達。
此去社洞書柬。傳于
南上舍許。而勿傳于本
家。如何。
辛未 八月 十五日。族侄 彙朝 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