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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이성순(李性淳)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1.0000-20150630.062525700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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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성순, 이병순
작성시기 1811
형태사항 크기: 30.3 X 40.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1년 이성순(李性淳) 서간(書簡)
1811년 9월 27일에 이성순이병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과 주변, 그리고 상대와 그 주변의 근황을 물은 뒤에 경관현풍현감에 제수되어 참으로 조정에 공의가 있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일문에서 세 명의 수령이 나와 장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있다고 하였다. 또 도회에 상초는 신행 때문에 응시하지 못하고 중질과 그 형은 가서 시험에 응시하는데, 시관으로 화백은 참여하지 않고 영해용궁, 청하 수령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한편, 치겸이 전중감이 되었다고 하니 연말의 도목정사에서 수령이 되는 것은 우려할 것이 없을 듯하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세목 1필을 보내니 북포로 바꿔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1차 작성자 : 김효심

상세정보

1811년 9월 27일, 李性淳이 여러 친지들의 근황을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1년(순조 11) 9월 27일에 李性淳(1757~1819)이 여러 친지들의 근황을 전해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性淳李秉淳의 막내 동생이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당시 李秉淳尙衣院僉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먼저, 뜻밖에 李秉淳이 보내준 편지를 받고서 서리 내리는 추운 날씨에 서울에서 벼슬하고 있는 李秉淳이 평안하고 숙병도 악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위로되고 다행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고 하였다. 다만 말이 병들어 말미를 받아 돌아올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였다. 仲母님께서 전에 비해 건강이 악화되지 않았고 仲兄[李民淳]도 평안하지만 자신의 숙병이 금년에 발작하여 숨을 헐떡이며 기침을 하고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李秉淳의 며느리는 아들을 얻고 나서 조금 살아가려는 의욕을 가지게 되었으나 病根이 깨끗하게 없어지지 않았으니 이것이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林皐 姪婦의 병은 소생할 가망이 있는 듯하나 元氣를 保할 방도가 없으니, 이것이 제일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막내 侄婦는 본래 약한 체질에 자주 출산하니 앞날이 걱정되는 마음이 없을 수 없다고 하였다. 新浦의 從嫂는 월초에 또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는데 별도로 雜症이 없이 삼칠일이 다 되었으니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老壽 집안의 延禮가 하루 앞으로 다가 왔으니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英文의 婚處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채로 올해가 다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아마도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 듯하다고 하였다. 그 나머지 각 집안의 至親은 그다지 대단한 우환은 없으니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농사는 밭의 경우 비록 흉년은 면했으나 논은 작년만 못하다고 하면서, 여러 從班들 입장에서 극히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景寬[聾窩 李彦淳]玄風縣監에 제수되었으니, 조정에 公議가 있다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一門에 세 명의 수령이 있어 장하기는 하나 도리어 두려운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였다. 都會에 尙初는 新行으로 인해 응시하지 못하고 仲侄과 그 형은 가서 보게 되는데, 試官으로 華伯은 참여하지 않고 寧海龍宮, 淸河 수령이 되었다고 한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穉兼[李載延]이 殿中監이 되었다고 하니 연말의 都目政事에서 수령이 되는 것은 우려할 것이 없을 듯하므로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細木 1疋을 보내니 北布로 바꿔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1년 이성순(李性淳) 서간(書簡)

兄主前 上書。 謹封。
自海村承信之後。聲息漠然。爲夙宵憂慮。料外。
伏承
下書。欣喜之餘。仍審霜寒
客中氣體平泰。宿症亦無越添之端。不勝慰幸。而第
緣馬病。失其由還之好機會。伏切慨恨之情。此中。
仲母主氣體。比前無損。仲兄筋力姑安。而舍弟之
宿苦。今年早發。喘咳度了。病中益切鬱陶之心。
而亦且奈何奈何。大宅侄婦。自得孫之寄食。稍有
世念。而渠亦願其少須臾無死之心。病根終無快祛。
是可悶也。林皐侄婦之病。目今所見。則似有蘇生之
望。而保元之道沒策。是第一悶歎。季侄婦半朔已
過。本以弱質。兼以頻産。不無來頭憂慮之心。新浦
從嫂。月初又擧丈夫兒。別無雜症。洽滿三七。可幸耳。老
壽家延禮隔日。可幸。而不無悲喜之交切。英文
昏處。尙未完定處。今歲將盡。可謂不病病憂
然。似有天定定故而然耳。餘外各家至親。別
無大段憂虞。而可幸。年事。田雖免凶。
畓多杇灾。原不如昨歲。爲諸從輩。
極爲悶念。景寬寬得除玄風。
可謂朝庭。亦有公議也。然一門三
宰。亦爲奇壯。還切
憂懼之心。都會。
拘於新行坐停。仲侄
與其兄往觀。而聞試官。
華伯不參。寧海及龍
宮淸河爲之云。餘奇
詳在仲兄書耳。
穉兼從爲殿中監
云。臘政作宰。似無
慮可幸耳。餘。不
備。伏惟
下鑑。上書。
辛未 菊月 二十七日。舍季 性淳 上書。

細木一疋送之。換送北布。
伏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