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7월 30일, 李治玉이 內行 일정에 대해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0년(순조 10) 7월 30일에 李治玉이 궁금한 근황을 묻고 자신이 內行을 모시고 가는 일의 일정에 대해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면, 수신자인 李秉淳은 順陵參奉으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은 1809년(순조 9) 12월 7일에 順陵參奉으로 제수되었다. 먼저, 李秉淳을 만났을 때 家學의 풍모에 觀感하고 李秉淳의 가르침에 훈도되어 자연 느낀 바가 많았다고 하였다. 겸하여 두터운 우의와 아름다운 덕을 입어 기쁘게 감격한 바가 깊었다고 하였다. 이어 李秉淳과 헤어지고 난 이후의 깊고 간절한 그리움과 섭섭함에 대해 전하였다. 또 20일 전에는 공교롭게도 몸을 빼낼 여가가 없었고 20일 뒤에는 마침 비가 내렸는데 27일에 조금 날씨가 개었기 때문에 泮村에 갔더니 여관에 사람은 없고 다만 邸人들만 시끄럽게 있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李秉淳이 있는 곳을 물으니 入直한 지 이미 여러 날이 되었다고 했다고 하면서, 성과 없이 돌아온 것은 고사하고 늦게 찾아간 죄를 면하기 어려웠다고 하였다. 이어 초가을 서늘한 기운에 直宿하고 있는 李秉淳의 체후가 어떠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나 공부가 齋에 있을 때와 비교하여 형편없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또 李秉淳이 언제 遞直하는지 묻고, 서늘한 기운이 으레 山中에서 먼저 시작되니 이러한 때에 오랫동안 直宿하는 근심이 많을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大家의 內行과 관련하여 자신이 모시고 가는 문제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였다. 추신에서는, 黃茶 2封을 올린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