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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이구시(李龜蓍)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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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구시,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작성시기 1810
형태사항 크기: 31.5 X 51.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0년 이구시(李龜蓍) 서간(書簡)
1810년 3월 20일에 이구시가 여러 안부를 주고받기 위해 이병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과 주변, 그리고 상대의 근황을 물은 뒤에 흉년이라 모두들 살아갈 대책이 없는데, 더욱이 가뭄이 너무 심하여 보리농사마저 흉년이 될 듯하니 매우 걱정이라고 하고, 또 야성에 계신 형님은 아직 한 칸의 작은 집을 얻지 못하고 모든 일이 어그러져서 걱정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순릉의 석역은 올해 안으로 하는지 물은 뒤에 추수 뒤에 만나러 가겠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효심

상세정보

1810년 3월 20일, 李龜蓍가 여러 안부를 주고받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0년(순조 10) 3월 20일에 李龜蓍가 여러 안부를 주고받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면, 수신자인 李秉淳順陵參奉으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1809년(순조 9) 12월 7일에 順陵參奉으로 제수되었다. 먼저, 宜仁과 자신이 살고 있는 浮浦가 5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늘 인편이 출발하고 난 뒤에 인편에 대해 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편지를 보내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參奉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과 都事 兄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께서 많이 편찮으시고 아이들도 腫氣로 아프다고 하므로 애가 타고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宜仁의 여러 사람들이 근래 모두 평안하고 李秉淳의 며느리가 근래 歸覲하러 갔다가 무사하다고 하니 매우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흉년에 각 집안이 살아갈 대책이 없는데 가뭄이 너무 심하여 보리농사마저 흉년이 될 듯하니 매우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野城 형님은 아직까지 한 칸 작은 집을 얻지 못하고 모든 일이 어긋나고 있으므로 매우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順陵의 石役은 과연 올해 안으로 하게 되는지 묻고 추수 뒤에 만나러 갈 계획임을 밝혔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0년 이구시(李龜蓍) 서간(書簡)

泮中 李參奉 旅邸 入納。
禮安 浮浦 再從候狀。 謹封。
坐在五里之地。每聞便於旣發之後。故
至今一未得替千里之面。恒切慊歎。曷有
其已。未審番風
直中起居節際玆珍重。都事兄主
亦幷爲平安耶。向風遙溯不任憧憧。
再從。親候常多欠寧節。焦憫之私。
已無可言。而兒少輩皆以腫氣相繼告
病。愁惱多端。奈何奈何。宜仁大小諸候近皆
平安。尊婦阿近作覲行。亦皆無事
云。何幸何幸。而荒年窮節。各家生理
沒策。旱旣太甚。麥事又似辦凶。雖
是身外之事。而不是小慮。亦且奈何。野城
兄主。則尙未得一間斗屋。百事齟
齬。見甚憫然。直所石役。果以今年內
設施耶。是爲夙宵顒望地耳。
便人未知的在何時。先此草草拜
候。餘萬。非咫尺之牘所可盡奉。都
留秋成後。欣握面悉。不宣。伏惟
遠照。謹候上狀。
庚午 三月 二十日。再從 龜蓍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