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3월 20일, 李龜蓍가 여러 안부를 주고받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0년(순조 10) 3월 20일에 李龜蓍가 여러 안부를 주고받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면, 수신자인 李秉淳은 順陵參奉으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은 1809년(순조 9) 12월 7일에 順陵參奉으로 제수되었다. 먼저, 宜仁과 자신이 살고 있는 浮浦가 5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늘 인편이 출발하고 난 뒤에 인편에 대해 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편지를 보내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參奉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과 都事 兄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께서 많이 편찮으시고 아이들도 腫氣로 아프다고 하므로 애가 타고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宜仁의 여러 사람들이 근래 모두 평안하고 李秉淳의 며느리가 근래 歸覲하러 갔다가 무사하다고 하니 매우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흉년에 각 집안이 살아갈 대책이 없는데 가뭄이 너무 심하여 보리농사마저 흉년이 될 듯하니 매우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野城 형님은 아직까지 한 칸 작은 집을 얻지 못하고 모든 일이 어긋나고 있으므로 매우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順陵의 石役은 과연 올해 안으로 하게 되는지 묻고 추수 뒤에 만나러 갈 계획임을 밝혔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