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순조 10) 12월 16일에 厓雲 柳致睦(1771∼1836)이 科擧 應試 등과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0년(순조 10) 12월 16일에 厓雲 柳致睦(1771∼1836)이 科擧 應試 등과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누차 함께했다가 만나지 못한 지 오래되니 그리운 마음이 평소보다 갑절이나 간절하다고 하였다. 혹한에 근무하고 있는 李秉淳가 건승한지 안부를 물었다. 柳致睦 자신은 객지에서 지내고 있는 상황이 갈수록 신산스럽다고 하였다. 成均館大司成을 鄭尙愚가 맡았다고 하고 장차 다 뽑을 기약이 있다고 하였는데, 科擧와 관련된 언급으로 보인다. 이것을 만약 얻으면 헛되이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하고, 마음을 단단히 차려 科擧에 應試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 科擧는 世譜를 제시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미상이다. 이후에도 관직 획득과 관련된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보이고, 李秉淳의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추신에서는, 며칠 뒤에 科場을 열고 그대로 出榜할 것이라고 하니 인근의 陵官에게 긴하게 부탁하더라도 때에 맞추지 못하는 문제가 있으면 곤란하다고 하면서 속히 도모해 달라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