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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김희교(金熙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0.4717-20150630.062525700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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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희교,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0
형태사항 크기: 26 X 37.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0년 김희교(金熙敎) 서간(書簡)
1810년 6월 15일에 김희교가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이병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과부가 된 의성김씨가 잘 지내고 있는지를 걱정하였다. 이어서 자신은 이제 막 상을 치루고 쇠약해졌으며 여러 곳에서 상이 발생한 것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순릉(順陵)의 공사가 진행여부, 여러 사람들의 소식을 묻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10년(순조 10) 6월 15일에 金熙敎가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0년(순조 10) 6월 15일에 金熙敎가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熙敎는 본관이 義城으로, 一枝窩 金宅東의 아들이다. 그의 형인 海隱 金熙成의 딸 義城金氏李秉淳의 아들인 李彙文과 혼인하였으므로, 그와 李秉淳은 戚分이 있다.
먼저, 李秉淳이 관직에 임명되어 서울로 간 지 벌써 반년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편지하여 축하하지 못했으니 비록 궁벽한 산중에 살며 세상일에 應酬하려는 뜻이 없었기 때문이나 이것이 어찌 평소에 기약했던 것이겠느냐고 하면서, 부끄럽고 슬픈 마음을 표하였다. 李秉淳이 예전보다 평안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替番하여 서울로 들어가 날마다 親知들과 서로 어울려 얘기를 나눔으로써 나그네의 근심스런 회포를 잊을 수 있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집안에 主管할 사람이 없이 과부가 된 며느리가 외로이 기거하고 있는지라 李秉淳이 먼 곳에서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였다. 金熙敎 자신은 초봄에 寃祥을 지내고 服制를 벗었다고 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전하고, 정신과 형체가 날로 쇠약해져서 온갖 질병이 번갈아 생겨 스스로 悲憐한 가운데 여름에 큰조카가 전염병으로 셋째와 넷째 두 아들을 연이어 잃었다고 하였다. 상심이 깊은 늙은 제수씨가 본래 원기가 약한데다 건강이 손상될 우려가 많으니, 매우 우려스럽다고 하였다. 이외에 黃田의 상황도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원근의 年輩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고 있는데 닭실의 上舍 翁과 湖上의 寢郞 公 같은 분들이 일시에 돌아갔다고 하였다. 또 權汝厚(權載德)가 아들 하나를 잃은 일과 松山의 慘變은 또한 극히 참혹하다고 하였다. 順陵에 큰 공사가 있어 李秉淳이 승급할 기회가 있다는 소식을 전에 들었다고 하면서, 다시 들은 소식이 없는데 혹 공사가 정지되어 성사되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彛瑞(李龜星) 및 서울에서 벼슬하고 있는 嶺南의 諸友가 모두 평안하게 지내고 있으며, 申庸晦가 수령에 제수되어 떠났는지도 물었다. 아울러 李秉淳이 還鄕할 시기가 언제 있을지 묻고, 병으로 궁벽한 산중에서 지내고 있는 자신이 만날 방도가 없기에 미리부터 서글프고 안타깝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뜸에 필요한 좋은 쑥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0년 김희교(金熙敎) 서간(書簡)

省式。御者縻祿西爲。已過半年。
而尙未得奉書相賀。雖緣僻居
窮峽。無意於酬接世事之致。而是
豈平昔所期哉。歉愧之餘。繼以自
悼也。伏惟
齋居淸讌。神氣超勝疇昔。少
小愆節。次第退聽。替番入洛。日有
親知相從譚話。忘却客懷愁惱。
是庸奉慰。但家無主管。弱孀孤
寄。難免千里遠念。良可歎也。戚末。
已於初春奄過寃祥。服制去身。萬
事成塵。摧割心腸。尤無所止泊。神形
日以澌鑠。百病交作。難可久視斯世。自
爾悲憐之中。夏間伯侄兒連喪三四兩
子於時沴。雖是殤慽。係關家運。老
嫂氏傷懷斗緊。自來綿綴之氣。多有暗
損之慮。憂悶不可言。此外黃田景色。不忍目
擊。遠近年輩。次第盡空。如酉谷上舍翁。湖上寢郞公。一
時喪出。不但相仗之篤爲可悲。吾黨之日孤。尤可痛也。權汝
之不保一子。松山之慘變。亦極慘絶。奈何。前聞有
本陵大役。陞出有階云矣。更無所聞。或停寢而不成否。
甚可鬱也。彛瑞
中諸友遊
宦者。俱得穩過。
申友庸晦。得
一麾而去否。還
鄕之期。似在何時。
雖旆住本第。病
蟄窮山者。無計
奉際。預庸悵
歎。玆修一書。付
之侄女。所以爲討便
傳達之地。未知入
覽在何時也。聽倩。
不宣狀禮。
庚午 六月 十五日。戚末 熙敎 頓。

家有劇憂。方欲灸治。而好艾。坐此無
可得之勢。或有念及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