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순조 10) 9월 10일에 柳玄休(1752~1821)가 婚處를 정하는 문제로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0년(순조 10) 9월 10일에 柳玄休(1752~1821)가 婚處를 정하는 문제로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李秉淳가 벼슬한 이후로 한 번도 안부를 묻지 않은 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방금 뜻밖에 李秉淳가 건강하게 歸鄕하여 至親들과 단란하게 즐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하면서, 참으로 缺界의 勝事라고 하였다. 柳玄休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나 어린 손자들이 小兒病으로 차례로 증세가 가볍지 않고 아이들도 모두 下邑으로 가서 집안이 텅 비었으며 가을철 農務가 급하여 온갖 일이 쇠약한 자신에게 집중된다고 하면서, 근심스럽고 골몰된 자신의 상황은 李秉淳에게 말씀드릴 만한 것도 없다고 하였다. 老壽 형제는 母子가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니 사랑스럽다고 하였다. 그 婚處는 아직까지 정해진 곳이 없는데, 星山에 언급한 것은 또한 異意가 있다고 하니 가소롭다고 하였다. 그가 장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미의 마음을 보건대 속히 며느리를 맞이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李秉淳이 내려왔을 때 여러 至親들과 상의하여 한 곳을 지정해 주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하였다. 湖上의 경우 外面은 자못 좋으나 규수가 어려서 올해나 내년에는 절대 혼인을 추진할 의사가 없다고 하니, 입을 떼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 宗家의 致謹 甫에게 孫女가 있다고 하는데 의견이 어떠하냐고 묻고, 李秉淳 측에서 탐문하는 것도 좋겠고 자신 쪽에서도 상황이 어떠한지 탐문해 보겠다고 하였다. 언제 복귀하는지 묻고 자신이 직접 나아가 쌓인 회포를 풀고 싶지만 한 번 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였다. 끝으로, 李秉淳가 빠른 시일 내에 수령으로 제수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