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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이재연(李載延)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10.4717-20150630.06252570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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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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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재연,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0
형태사항 크기: 26.5 X 3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0년 이재연(李載延) 서간(書簡)
1810년(순조 10) 11월 22일에 이재연(李載延)이 김직장(金 直長)이 자리를 바꿀 수 있게 인사 담당 관원에게 청탁을 넣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말을 팔아 더 좋은 말을 사는 방안에 대해 알려 주기 위해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틀이나 삼일이라 해도 말을 제대로 먹이는 것이 극히 어려우니 속고(粟藁)와 태두(太斗)를 변통해서 보내 달라고 다시 한 번 당부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10년(순조 10) 11월 22일에 李載延이 金 直長이 자리를 바꿀 수 있게 인사 담당 관원에게 청탁을 넣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말을 팔아 더 좋은 말을 사는 방안에 대해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10년(순조 10) 11월 22일에 李載延이 金 直長이 자리를 바꿀 수 있게 인사 담당 관원에게 청탁을 넣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말을 팔아 더 좋은 말을 사는 방안에 대해 알려 주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載延은 본관이 延安, 자가 致謙으로, 生員試에 입격하고 縣監 등의 관직을 지냈다. 그의 부친은 李之受인데, 李之受李秉淳의 조부인 李世述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李秉淳에게 李之受는 고모부가 되고, 그의 아들 李載延은 고종사촌이 된다.
먼저, 李泰淳이 藥을 복용하고 神效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안정을 취하여 攝養의 유익함이 반드시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李載延 자신은 胸脇 부위에 痰이 맺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부득이 入番하여 모레 出直하게 되니 자신의 생활이 참으로 고생스럽다고 하였다. 金 直長이 비록 付祿되었으나 만약 그대로 獻陵에 있게 된다면 冬至祭로 受香하고 나가서 謝恩하지 못할 것이고 正朝에는 필시 落職할 것이니 매우 옹색한 형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본인이 말하기도 전에 어제 이미 銓家에 司圃署 등 부서의 직임과 바꿀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기는 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3, 400냥이 넘게 필요하니 어찌 용이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더구나 현직 銓官尤庵의 후손이니 반드시 바꿔 주리라고 보장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어 李秉淳이 타는 말은 결코 한때나마 탈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성질이 매우 용렬하고 게을러 팔기도 어려우니 쓸데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李載延 자신이 바꿔주고 싶다고 하면서, 이 시기에 반짝 잘 먹여 끌고 온다면 마침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자에게 팔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30金을 받고 팔 수 있다면 좀 더 괜찮은 것을 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사람을 보내니 그에게 돌아올 여비와 2, 3일치 말을 먹일 거리, 三丁, 안마 등을 줘서 23일 안으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다. 粟藁 10여 束을 얻어 말 등에 실어 보내달라고 하였고, 안장은 泮主人에게 있으니 牌字를 만들어 보내면 수리해서 줄 것이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이틀이나 삼일이라 해도 말을 제대로 먹이는 것이 극히 어려우니 粟藁와 太斗를 변통해서 보내 달라고 다시 한 번 당부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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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10년 이재연(李載延) 서간(書簡)

昨日貴隷便上書。想已
覽矣。日寒如此。伏不審此時
直候連享萬安否。藥貼數。已至多日。或無效
靈。而齋居安靜。必有攝養之益。是所祝也。
表從弟。不勝寒苦。膈間胸脇。頑痰凝結。
終宵不得眠。不得已入番。而再明將出。此生良
苦。奈何。金直長雖爲付祿。而若仍在
獻陵。則冬至受香。不得謝恩。且正朝必然
落職。勢甚壅塞。故不待自家之言。昨已送言
于銓家。以爲相換於司圃等地。而司圃所用。
過三四百兩。何能容易乎。且見帶之人。乃是
尤庵後孫。難保其必換也。日日加請債錢。而
弟以何等殺活。此時得債錢乎。良可笑歎。
兄主所騎馬。決非一時可堪騎者。且性甚庸懶。
難於卽賣。可謂冗鬣。切欲爲兄主改立。一
才步之號。適有下鄕者。求一價歇卜馬。此時
若善喂牽來。則可以見售。得三十金準
價。則亦可求稍可者。爲兄主謀忠。玆
以委走。弟之雨裝。直幸使之給回資與二三
日喂馬之資。兼送三丁及隨馬之卜鞍等物。
急急治送。使之二十三日內。趁此之地。如何。得
粟藁十餘束。善爲付送於馬背。如何。卜
鞍在於泮主人。作牌以付。則補綴以給。可
爲眞成矣。弟之此擧。可
謂太過。而非弟爲之周旋
而何。還可自笑其
煩擧矣。餘。恐
願賣者舍而他
求。玆以急走耳。
餘。不備上書之禮。
庚午 至月 二十二日。表從弟 載延 拜手。

雖二三日喂馬極難。幸粟藁與太斗推移給送。如何。
順齋直長必然相換。以內
司無故員料不出。今明發落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