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12월 19일, 李泰淳이 상경한 근황을 전하고 만남을 기약하기 위해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0년(순조 10) 12월 19일에 草草庵 李泰淳(1759~1840)이 관직에 제수되어 상경하여 근황을 전해 주고 만남을 기약하기 위해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李泰淳 자신이 고향에 있을 때 李秉淳이 同舍에 와서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날마다 방문하리라 마음먹고 泮村에 도착했더니 李秉淳이 이미 入直하고 없었다고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入直하고 있는 李秉淳의 안부를 묻고, 고향 宜仁의 소식은 仲氏(李民淳)의 편지에 들어 있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李泰淳 자신은 임금의 은혜로운 落點을 받아 다시 泮村에 머물게 되었는데 旅毒은 고사하고 新塘의 사위 父子가 며칠 상간에 모두 사망했다고 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전하였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泰淳은 이달 2일에 成均館司成으로 임명되었다. 또 新塘의 사위는 李泰淳의 첫째사위인 金逵漸을 가리키는데, 金逵漸은 이해에 사망하였다. 이어 李泰淳은 사위 金逵漸 父子의 사망으로 10世의 宗祀가 일시에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언급한 것은 金逵漸이 雲巖 金明一의 冑孫이기 때문이다. 李泰淳은 이 소식을 李秉淳이 듣고서 마음이 극히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李泰淳은 자신이 어제 저녁에 泮村에 도착하여 내일 장차 出肅할 것인데 아직 앞으로의 일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李秉淳이 내달 초에 出番한다고 하니 자신과의 만남을 각별히 도모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한편, 이 간찰의 뒷면에 聾窩 李彦淳(1774∼1845)의 간찰이 기재되어 있다. 자신이 付職되는 일은 바라지도 않고 泮村에 머물고 있는 것이 갈수록 難便하다고 하였으며, 老人 加資를 바라며 누차 吏曹의 下吏에 서신으로 연락하였으나 下吏가 일이 많다는 이유로 끝내 回示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극히 답답하다고 하였다. 결국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장차 20일 뒤에 내려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