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2월 16일, 李龜天이 아들 李同淳의 관직 임명 등과 관련하여 李秉淳에게 보낸 편지
1810년(순조 10) 2월 16일에 李龜天이 아들 李同淳의 관직 임명 등과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면, 수신자인 李秉淳은 順陵參奉으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李秉淳은 1809년(순조 9) 12월 7일에 順陵參奉으로 제수되었다. 李龜天은 李純道의 후손으로 李世學의 아들이다. 文科에 급제한 樊庵 李同淳의 부친이다. 먼저, 仲吾 집에 도착한 편지를 통해서 근래의 안부를 알게 되어 다행스러웠다고 하고 다시 날이 많이 지났는데 參奉으로 재직하고 있는 李秉淳의 근황이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아울러 都事 형님의 안부도 한결같은지 물었다. 李龜天 자신은 이사하는 일이 이미 끝났으나 항상 누워서 지내고 있다고 하면서, 괴로운 상황을 전하였다. 일전에 긴급했던 일은 서로 의논할 사람이 없었으니, 李秉淳이 객지에서 벼슬살이하고 있는 것이 자신에게는 불행한 일임을 절감했다고 하였다. 또 順陵의 石役이 아직까지 결정 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작년에 付職되고 올해 참상(參上)인 6품으로 오른 것도 운수에 달린 것이었으므로 어찌 미리 헤아릴 수 있었겠느냐고 하였다. 다음으로는, 李龜天의 아들인 李同淳의 관직과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다. 李同淳은 1807년(순조 7)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 시기까지 본격적으로 관직을 제수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李龜天은 12월의 都目政事까지 간다면 別檢보다는 馬官[察訪]에 제수되는 것이 낫겠다고 하면서도 모두 운수소관이므로 미리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李秉淳의 며느리가 보기에 가련하게 지내고 있기는 하나 仲吾도 있고 至親도 있어서 각 집안의 大小事를 모두 상의해서 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치 말라고 하였다. 끝으로, 흉년이 극심하여 앞으로의 생계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드러냈다. 추신에서는, 편지를 본 뒤에는 태워 버리라고 하였으며 英兒의 등에 놓을 쑥뜸에 필요한 좋은 쑥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