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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 김희성(金熙成)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03.0000-20150630.062525700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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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희성, 이병순
작성시기 1803
형태사항 크기: 25.2 X 41.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3년 김희성(金熙成) 서간(書簡)
1803년 10월 3일에 해은(海隱) 김희성(金熙成)이 자신의 질병 치료와 관련하여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병순은 약을 지어 복용하기 위해 약재를 구하고 있다고 하였다. 주 약재인 자수정(紫水晶)은 경주에서 생산되어 선산부사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하였다고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03년(순조 3) 10월 3일에 海隱 金熙成(1741~1804)이 자신의 질병 치료와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03년(순조 3) 10월 3일에 海隱 金熙成(1741~1804)이 자신의 질병 치료와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熙成은 본관이 義城, 자가 誠之로, 一枝窩 金宅東의 아들이다. 文科에 급제하고, 持平에 제수된 바 있다. 그의 딸인 義城金氏李秉淳의 아들인 李彙文과 혼인하였으므로, 그와 李秉淳은 서로 사돈지간이 된다. 먼저, 근래 조금 격조하여 그리운 마음이 깊었다고 하였으며 李秉淳과 자신의 딸 義城金氏의 안부를 물었다. 또 海平[善山] 친정으로 간 안사돈(李秉淳의 부인인 善山金氏)을 언제쯤 데리고 오는지도 물었다. 李秉淳이 會試 공부에 과연 유의하고 있는지도 묻고, 잗다란 일은 하지 말고 마음을 굳게 먹고 공부하라고 당부하였다. 金熙成 자신은 원래의 병증이 덜해진지는 모르겠으나 정신과 기운이 지난번과 비교해서는 맑아진 것 같다고 하면서, 조금이나마 다시 소생할 가망이 있는 듯 하다고 하였다. 자신의 큰아들이 星山에 가서 問藥하고 이어 咸昌에 들어가 처방에 대해 상의해 보니 과연 星山咸昌에서 얻은 결과에 차이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약을 지어 복용해 보고자 하는데, 蔘料의 경우 절반 가까이 비축하고 있고 그 나머지는 현재 구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紫水晶이 주 약재인데 이것은 藥局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慶州에서 생산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善山府使로 하여금 구해서 보내게 하였는데 지체될 것으로 생각되어 복용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3년 김희성(金熙成) 서간(書簡)

近稍阻信。瞻想可喩。未審
日間
靜候如何。而女兒亦免疾恙否。
寥寂之懷想愈甚。海平內行。
何當携來也。會工果已留意
否。幸除却瑣務。銳意做去。多
多益善。須勿泛過焉。弟。聽狀元
症。則不知有顯減。而所進稍勝。神
氣較向來似惺惺。或有一分更甦
之望耶。伯兒問藥於星山。因入
咸昌相議。則果無異同。俱是一方
兩醫之意。不謀而同。亦是異事。方
欲製服。參料則所儲者幾半。其
餘當求用。而紫水晶爲主材。此非
藥局所存。惟慶州所産。纔使紫海倅
求送。而想易稽遲。似難內服。可悶。餘。憑
沙村侄壻溪上行。暫報▣(消)
息。不宣狀。
癸亥 陽月 初三。査弟 熙成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