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년(순조 3) 10월 3일에 海隱 金熙成(1741~1804)이 자신의 질병 치료와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03년(순조 3) 10월 3일에 海隱 金熙成(1741~1804)이 자신의 질병 치료와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熙成은 본관이 義城, 자가 誠之로, 一枝窩 金宅東의 아들이다. 文科에 급제하고, 持平에 제수된 바 있다. 그의 딸인 義城金氏가 李秉淳의 아들인 李彙文과 혼인하였으므로, 그와 李秉淳은 서로 사돈지간이 된다. 먼저, 근래 조금 격조하여 그리운 마음이 깊었다고 하였으며 李秉淳과 자신의 딸 義城金氏의 안부를 물었다. 또 海平[善山] 친정으로 간 안사돈(李秉淳의 부인인 善山金氏)을 언제쯤 데리고 오는지도 물었다. 李秉淳이 會試 공부에 과연 유의하고 있는지도 묻고, 잗다란 일은 하지 말고 마음을 굳게 먹고 공부하라고 당부하였다. 金熙成 자신은 원래의 병증이 덜해진지는 모르겠으나 정신과 기운이 지난번과 비교해서는 맑아진 것 같다고 하면서, 조금이나마 다시 소생할 가망이 있는 듯 하다고 하였다. 자신의 큰아들이 星山에 가서 問藥하고 이어 咸昌에 들어가 처방에 대해 상의해 보니 과연 星山과 咸昌에서 얻은 결과에 차이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약을 지어 복용해 보고자 하는데, 蔘料의 경우 절반 가까이 비축하고 있고 그 나머지는 현재 구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紫水晶이 주 약재인데 이것은 藥局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慶州에서 생산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善山府使로 하여금 구해서 보내게 하였는데 지체될 것으로 생각되어 복용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