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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김희성(金熙成)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01.4717-20150630.062525700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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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희성, 이병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작성시기 1801
형태사항 크기: 20.5 X 29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1년 김희성(金熙成) 서간(書簡)
1801년(순조 1) 1월 28일에 해은(海隱) 김희성(金熙成)이 집으로 돌아온 딸의 안부를 알리고 과거와 관련하여 이병순(李秉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희성은 자신과 딸아이의 근황을 전하였다. 이병순의 중씨(仲氏) 이민순(李民淳)과 종씨(從氏)들이 과거를 보러가기 위한 준비 상황을 물었다. 자신의 큰아들 김재인(金在仁)은 말을 구하지 못하였고, 또 조흘강(照訖講) 때문에 먼 곳으로 갔다고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01년(순조 1) 1월 28일에 海隱 金熙成(1741~1804)이 歸覲 온 딸의 안부를 알리고 科行과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
1801년(순조 1) 1월 28일에 海隱 金熙成(1741~1804)이 歸覲 온 딸의 안부를 알리고 科行과 관련하여 李秉淳(1751~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熙成는 본관이 義城, 자가 誠之로, 一枝窩 金宅東의 아들이다. 文科에 급제하고, 持平에 제수된 바 있다. 그의 딸인 義城金氏李秉淳의 아들인 李彙文와 혼인하였으므로, 그와 李秉淳는 서로 사돈지간이 된다. 먼저, 근래 조금 격조하여 그리운 마음이 한층 간절해졌다고 하였다. 이어 요사이 喪中에 있는 李秉淳가 어떠한지 안부를 묻고 딸아이(李秉淳의 며느리 義城金氏)가 이미 歸覲하여 슬하에 사람이 없으니 李秉淳가 더욱 지내기 어려울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이는 李彙文의 사망과 관련한 언급으로 보인다.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며 오랫동안 계속된 손자의 질병이 근래 다행히 조금 괜찮아졌다가 또 다시 악화되었다고 하면서 가련하고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딸아이가 온 뒤로 질병은 없으나 부모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비참한 기색을 짓지 않고 있는데 이것이 더욱 차마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李秉淳의 仲氏 李民淳 및 從氏들이 科擧를 보러가는 제반 준비 상황이 괜찮은지 묻고, 큰아들인 金在仁이 타고 갈 말을 아직 입수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또 큰아들이 照訖講 때문에 먼 곳으로 달려갔다고 하면서, 李秉淳 쪽의 응시자들은 이러한 수고가 없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李秉淳(1751~1818)은 본관이 眞城, 자가 幼性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高孫인 隱拙齋 李守弘의 曾孫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그는 1804년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14년에 淸安縣監로 임명되었는데, 재직 중이던 1818년에 사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1년 김희성(金熙成) 서간(書簡)

宜仁 孝廬 入納。
海里候疏。 省式謹封。
省式。近稍閡信。瞻仰尤摯。
未審日間
哀候如何。女兒旣歸覲。
膝下無人。想尤難堪遣矣。弟。
一如前狀。而小孫支離之疾。近
幸小却。又復添發。憐悶當
如何。女兒來無疾恙。爲慰
其父母不作悲慘之色。而此尤
爲不堪見。奈何。
仲氏曁諸從氏科行凡百。得
無郎當者否。伯兒所騎。姑未
入手。又以照訖講。奔走百里之地。想
貴中擧子。則無此勞矣。餘。適聞
有過便。暫此。不宣疏
禮。
辛酉 正月 念八日。弟 金熙成 省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