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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이육(李錥)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800.4785-20150630.K27140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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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육, 최식
작성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작성시기 1800
형태사항 크기: 28.5 X 38.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0년 이육(李錥) 서간(書簡)
1800년 1월 4일에 이육이 계정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까닭과 거창족숙이 보낸 돈 18민을 전하기 위하여 최식에게 보낸 편지이다. 새해에 큰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새해 인사를 시작으로 하여 자신은 집안의 우환이 그치지 않아 당모(堂母)의 상을 당했다고 하였다. 근래 있었던 계정 모임은 제사로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편지를 써 두고서 치기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결국 부치지 못하여 유감스럽다고 하였다. 그리고 거창족숙이 보낸 돈 18민은 사위를 통해 부치고자 했지만, 만나지 못하여 전담 하인을 통해 보낸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00년 1월 4일, 李錥이 계정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까닭과 居昌族叔이 보낸 돈 18緡을 전하기 위하여 崔湜에게 보낸 편지
1800년 1월 4일에 李錥이 계정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까닭과 居昌族叔이 보낸 돈 18緡을 전하기 위하여 崔湜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 내용은 새해 인사로 시작되고 있다. 서로 소식이 막힌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또 해가 바뀌니 상대방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새해에 큰 복을 받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라 전할 만한 소식이 없지만, 집안의 우환이 그치지 않아 堂母의 상을 당했는데, 뜻 밖에 당한 변고이기 때문에 成服도 잘 행하지 못하여 더욱 슬프다고 하였다. 근래 있었던 溪亭의 모임은 마침 제사를 만나서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편지를 써 두고서 稚器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결국 부치지 못하여 유감스럽다고 하였다. 그리고 居昌族叔이 보낸 돈 18민緡은 壻君을 통해 부치고자 했지만, 서로 만나지 못하여 전담 하인을 통해 돈을 보내니 헤아려 받아달라고 하였다. 끝으로 만나서 이야기할 기약이 없는 것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전하며 편지를 마쳤다.
발급인인 李錥(1754~1819)은 본관은 碧珍, 자는 仲鍊, 호는 二可齋, 부친은 李忠祿, 조부는 李熙一이다. 漆谷 上枝에 거주하였으며, 李彦英의 후손이다. 1789년 증광시 3등으로 생원에 입격하고, 1807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편지의 피봉을 보면 ‘淸彦兄’과 ‘崔生員’이라고 써져 있는데, 淸彦은 百弗庵 崔興遠의 손자인 崔湜(1762~1807)의 字이다. 최식은 본관은 경주, 초휘는 㵓, 호는 近齋, 부친은 崔周鎭, 配는 晉陽鄭氏이며, 품계가 通德郞에 올랐다.
편지 내용 중에서 ‘壻君’은 남의 사위를 높여 부르는 말인데, 여기에서는 상대방의 사위이자 자신의 아들인 愚石 崔鳳述(1784~1838)을 가리킨다. 따라서 발급인 이육과 수취인 최식은 서로 혼인관계를 맺은 사돈 사이임을 알 수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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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00년 이육(李錥) 서간(書簡)

淸彦兄 謹候上狀。
崔生員 侍史。省式謹封。
相阻已久。曰又改歲。瞻仰東天。如之何
不思。卽惟新元
靜履茂納鴻休。仰賀且溸區區。弟。
昨歲人。無足奉聞。而家禍未已。遭堂母喪。
悲慟之私。已無言。而變出意外。成服。亦未
禮日過行。痛迫何極。比者溪亭之會。
敢不躬進以參道席之末。而適値祀
故。未克遂意。故裁書以置。苦待稚器之行。
而亦違繣未付。迨今悵恨。居昌族叔所送
錢十八緡。留在弟處。欲付於壻君便矣。
時弟出外。壻君不見而歸。故玆以專人負
送。考納如何。何當奉敍。臨紙忡
悵。餘悲擾。不宣。卽惟
下照。謹候上狀。
庚申 元月 初四日。弟 李錥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