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3월 22일에 崔興遠, 崔興厚가 친구인 李象靖의 상을 위문하기 위해 李光靖에게 보낸 편지
1782년 3월 22일에 崔興遠(1705∼1786), 崔興厚(1717~1799)가 친구인 李象靖(1711~1781)의 상을 위문하기 위해 李光靖(1714~178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백씨 형의 장례가 며칠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여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伯兄은 이광정의 형인 이상정을 의미한다. 평소에 자신은 백형과 교분을 맺고 있었고 그가 임종하는 날에 자신을 언급하였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자신은 근력이 부족하여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 가지 못하고 다만 편지를 써서 보내니 죄송하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당신께서 묘지명을 저에게 부탁하셨는데 제가 능력이 부족하여 그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원래 묘지명은 朴孫慶(1715~1782)에게 부탁을 하였으나 박손경이 갑자기 죽게 되자 최흥원에게 부탁을 하게 된 것이다.
발급자 최흥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로 본관은 慶州, 자는 太初 또는 汝浩, 호는 百弗庵이다. 대구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崔壽學이고, 아버지는 崔錫鼎이며, 어머니는 진사 趙崈의 딸이다. 1782년 장악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1784년 世子翊衛司左翊贊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침식을 잊을 정도로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대대로 달성의 칠계에 살았기 때문에 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후는 자는 재숙(載叔), 호는 긍와(兢窩)로 통덕랑을 지냈다.
수취자 이광정 본관은 韓山, 자는 休文, 호는 小山, 아버지는 李志和이고 생부는 李泰和이다. 안동출신으로 李栽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소산집����이 전해진다. 편지에 등장하는 이상정, 최흥원, 박손경은 영남삼로로 불릴 정도로 친분이 높았으며 영남에서 학문적 지위와 영향력이 높은 인물들 이었다.
이 편지는 영남의 대표적인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최흥원과 이상정의 교류관계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들은 서로의 학문적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학문적 깊이나 위상을 높여나갔으며 어려움이 발생하였을 때 서로가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