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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년 최흥원(崔興遠) 외 1인 위장(慰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782.2714-20150630.K2714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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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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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내용분류: 종교/풍속-관혼상제-위장
작성주체 최흥원, 최흥후, 이광정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작성시기 1782
형태사항 크기: 37.5 X 3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82년 최흥원(崔興遠) 외 1인 위장(慰狀)
1782년 3월 22일에 최흥원, 최흥후가 친구인 이상정의 상을 위문하기 위해 이광정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평소에 자신은 이상정과 교분을 맺고 있어서 더욱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은 근력이 부족하여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 가지 못하고 다만 편지를 써서 보내니 죄송하다고 하고 부탁받은 묘지명은 자신이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782년 3월 22일에 崔興遠, 崔興厚가 친구인 李象靖의 상을 위문하기 위해 李光靖에게 보낸 편지
1782년 3월 22일에 崔興遠(1705∼1786), 崔興厚(1717~1799)가 친구인 李象靖(1711~1781)의 상을 위문하기 위해 李光靖(1714~178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백씨 형의 장례가 며칠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여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伯兄은 이광정의 형인 이상정을 의미한다. 평소에 자신은 백형과 교분을 맺고 있었고 그가 임종하는 날에 자신을 언급하였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자신은 근력이 부족하여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 가지 못하고 다만 편지를 써서 보내니 죄송하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당신께서 묘지명을 저에게 부탁하셨는데 제가 능력이 부족하여 그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원래 묘지명은 朴孫慶(1715~1782)에게 부탁을 하였으나 박손경이 갑자기 죽게 되자 최흥원에게 부탁을 하게 된 것이다.
발급자 최흥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로 본관은 慶州, 자는 太初 또는 汝浩, 호는 百弗庵이다. 대구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崔壽學이고, 아버지는 崔錫鼎이며, 어머니는 진사 趙崈의 딸이다. 1782장악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1784世子翊衛司左翊贊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침식을 잊을 정도로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대대로 달성칠계에 살았기 때문에 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최흥후는 자는 재숙(載叔), 호는 긍와(兢窩)로 통덕랑을 지냈다.
수취자 이광정 본관은 韓山, 자는 休文, 호는 小山, 아버지는 李志和이고 생부는 李泰和이다. 안동출신으로 李栽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소산집����이 전해진다. 편지에 등장하는 이상정, 최흥원, 박손경은 영남삼로로 불릴 정도로 친분이 높았으며 영남에서 학문적 지위와 영향력이 높은 인물들 이었다.
이 편지는 영남의 대표적인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최흥원이상정의 교류관계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들은 서로의 학문적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학문적 깊이나 위상을 높여나갔으며 어려움이 발생하였을 때 서로가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인호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82년 최흥원(崔興遠) 외 1인 위장(慰狀)

生員 服前。
狀上。【省式謹封】
省式言。一自人事異昔。所以眷眷於
賢兄者。不比他時。而衰昏日甚。轉覺收拾不上。候問曠廢。情意莫遂
有時興言悼想而已。不審卽日春暮。
服履節宣何如。伏承
白氏兄襄禮有期。日月幾何。遽論此事。以興遠之辱在交游。猶怛然悼
傷。如不欲生。矧惟
兄友愛之慟。何所涯際耶。爲之悲溯。無時可已也。興遠平日荷
伯氏兄眷厚。已自踰量。而且承屬纊之日。語及無似。亹亹有未忘
之意。顧以疎慵。何以得此於君子。尤覺感泣。不知爲懷。極欲强衰
趨哭。而終是筋力不堪。及今窀穸之日。而只草草替伸。情理掃如
矣。悲愧交幷而已。頃承
兄答慰書。末略有所云云。固知微顯闡幽之意。而自知不文。不足以承當。
已於曩日從孫之行。俾達區區。伏想有以曲諒也。前此得省郵書
云。渠於奔哭之行。已屬
左右。用伊川故事。想其義有所不得辭也。南野公又復不淑。吾黨運氣。
一何蹇耶。曾聞請誌於此兄。果得就緖否。不然。尤增一恨耳。倩
手。不暇究宣。惟祝
節情以完大事。伏惟
下照。狀上。
壬寅 三月 二十二日。弟 崔興遠 興厚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