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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정종로(鄭宗魯)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780.4725-20150630.K2714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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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종로, 최흥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780
형태사항 크기: 34.5 X 4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80년 정종로(鄭宗魯) 서간(書簡)
1780년 7월 21일에 정종로가 위문하기 위해 최흥원에게 보낸 편지로, 입재와 백불암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간찰로 평가된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1780년 7월 21일에 鄭宗魯가 위문하기 위해 崔興遠에게 보낸 편지
1780년 7월 21일에 鄭宗魯(1738~1816)가 위문하기 위해 崔興遠(1705~1786)에게 보낸 편지이다.
數咎庵은 최흥원의 원래 號로 자신의 "허물을 손꼽는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 立齋의 나이 45세였고 百弗庵은 75세로 죽기 7년 전이다. 피봉에서 입재는 백불암을 "尊丈"이라 칭하고 있다. 이는 입재가 백불암의 문인이 아니라는 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입재는 백불암의 손자인 近齋 崔湜(1762-1807)을 사위로 맞으니 두 집안은 師承관계를 넘어 인척관계를 맺고 있다.
立齋는 병중의 백불암에 편지를 보냈으나 한동안 회신을 받지 못했다. 노심초사 기다리던 끝에 회신을 받고 쓴 답서이다. 백불암의 병세를 자세하게 알게 된 입재는 연로한 나이에 늘 있는 병이라 쉽게 생각하지 말고, 그런 증세는 쉽게 낫는 것이 아니니, 치료에 각별히 힘쓰라는 마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손자며느리가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순산했으며 건강하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위로하고 있다. 입재와 백불암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간찰로 평가된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박세욱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80년 정종로(鄭宗魯) 서간(書簡)

數咎庵 下執事。
尊丈前 謹再拜上謝狀。[着名]謹封。
方苦佇回音。玆伏承
下覆書。槩伏審
調中體候一向萬衛。伏慰無已。第
肩臂之患。至妨運匙。當夜深痛。積日彌苦。
八耋衰謝之境。所以鎖鑠於不知不覺之頃。從可伏想
向來艾炙。則審固無效。而根委之症。恐非勿藥之比。伏
望無置例常。趁加醫治。以爲卽速平復之地。如何。
令咸僉兄必不待覼縷神明所勞。抑或有自喜之日。
而區區仰慮之至。自不覺獻愚如是耳。侍敎生。奉慈
依昨。女息亦無雜症。若一味善飯愼攝。蘇完似易。
初産之極。順如此者。皆云多男之象。但以私家貧約。
率置膝下之後。此等救療之資。亦不免遠
貽憂念。是可伏嘆。壻君知以路痘姑停行。然相見
只在早晩。豈勝欣企之情耶。餘惟伏祝
體中愆候日尋蔗境。副此微誠。不備。
伏惟
下鑑。謹再拜上候狀。
庚子 七月 二十一日。侍敎生 鄭宗魯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