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7월 21일에 鄭宗魯가 위문하기 위해 崔興遠에게 보낸 편지
1780년 7월 21일에 鄭宗魯(1738~1816)가 위문하기 위해 崔興遠(1705~1786)에게 보낸 편지이다.
數咎庵은 최흥원의 원래 號로 자신의 "허물을 손꼽는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 立齋의 나이 45세였고 百弗庵은 75세로 죽기 7년 전이다. 피봉에서 입재는 백불암을 "尊丈"이라 칭하고 있다. 이는 입재가 백불암의 문인이 아니라는 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입재는 백불암의 손자인 近齋 崔湜(1762-1807)을 사위로 맞으니 두 집안은 師承관계를 넘어 인척관계를 맺고 있다.
立齋는 병중의 백불암에 편지를 보냈으나 한동안 회신을 받지 못했다. 노심초사 기다리던 끝에 회신을 받고 쓴 답서이다. 백불암의 병세를 자세하게 알게 된 입재는 연로한 나이에 늘 있는 병이라 쉽게 생각하지 말고, 그런 증세는 쉽게 낫는 것이 아니니, 치료에 각별히 힘쓰라는 마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손자며느리가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순산했으며 건강하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위로하고 있다. 입재와 백불암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간찰로 평가된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박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