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3년 9월 16일, 崔興遠 외 2인이 근황과 안부를 전하고 상대가 써 준 記文의 검토 및 고을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 묻기 위해 쓴 편지
1753년 9월 16일에 崔興遠(1705∼1786) 외 2인이 근황과 안부를 전하고 상대가 써 준 記文의 검토 및 고을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 묻기 위해 쓴 편지이다.
처음 상대와 일전에 만난 이야기를 언급하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특히 상대가 병든 상황에 공무를 보며 고생하고 있는 점을 걱정하였다. 본론으로 일전에 상대에게 부탁하여 받은 집안 齋堂의 기문에 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아울러 교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永川의 沙橋로 추정되는 곳에 사는 최씨 일족들에게도 이 기문을 전해주어 논의하겠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海邑의 수령이 해당 관아의 色吏를 벌 준 일에 대해 언급하였다. 추록에는 상대가 보내준 소금을 잘 받았다고 하였다.
발급인인 최흥원은 본관은 경주, 자는 太初 · 汝浩, 호는 百弗庵이다. 본 문서에 저자의 성명을 ‘崔興原’으로 표기하였는데, 나중에 ‘崔興遠’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778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 교관이 된 이후 장악원주부, 世子翊衛司左翊贊 등을 역임하였다. 夫仁洞規를 세워 고을의 풍속을 바로잡았고, 先公庫 · 恤貧庫 등을 만들어 고을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사후 효행으로 정려되고, 승지에 추증되었다. 수취인은 피봉이 누락된 관계로 확실히 파악할 수 없고, 본문에 최흥원이 상대에 대해 ‘제(弟)’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면 동년배 정도의 친우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