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9년 5월 3일에 崔興源과 동생 崔興漸이 李光靖과 李象靖에게 보내는 위문 답장
1749년 5월 3일에 崔興源(1705~1786)과 동생 崔興漸(1709~1771)이 李光靖(1714~1789)과 李象靖(1711~1781)에게 보내는 위문 답장이다.
수급자인 "生員"은 소산 李光靖이고 "좌랑"은 대산 李象靖으로 추정된다. 이상정은 1747년 예조와 병조에서 좌랑을 지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대산선생 年譜에 따르면 1749년 3월 "崔百弗庵이 내방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고, 그 달에 바로 이상정의 부친인 처사공의 상을 당했으니, 본 편지의 내용과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지난번 간 것(1749년 3월)은 뭔가를 해볼 요량이었지만, 병이 나고 혼잡한 조문으로[대산의 부친상을 당함] 정을 다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고, 말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못한 자신을 나무라는 것으로 시작한다. 돌아오는 길에 병까지 더해져 돌아와 자책감과 그리움에 시달리고 있던 차에 상대편의 편지를 받아 크게 위로가 되었음을 밝혔다. 고질병을 앓고 있는데다 상례 끝에 몸이 많이 상했을 상대를 걱정하며 서로 잘 보중하여 바람에 부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썼다. 이어서 복통 설사에다 종기까지 난 자신의 병증과 지난해 묵은 병이 재발한 셋째 동생의 정황을 기술했다. 게다가 노인의 병세가 심해져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끼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이 불효한 소치라는 자책을 하고 있으며 그로써 자식들의 공부에 많은 폐가 되고 있음을 솔직하게 전하고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박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