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749년 최흥원(崔興源) 외 1인 위장(慰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749.2714-20150630.K271400291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내용분류: 종교/풍속-관혼상제-위장
작성주체 최흥원, 최흥점, 이광정, 이상정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작성시기 1749
형태사항 크기: 35.5 X 4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49년 최흥원(崔興源) 외 1인 위장(慰狀)
1749년 5월 3일에 최흥원과 동생 최흥점이광정이상정에게 보내는 위문 답장이다. 이광정, 대산 이상정 형제와 백불암 집안과의 끈끈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1749년 5월 3일에 崔興源과 동생 崔興漸李光靖李象靖에게 보내는 위문 답장
1749년 5월 3일에 崔興源(1705~1786)과 동생 崔興漸(1709~1771)이 李光靖(1714~1789)과 李象靖(1711~1781)에게 보내는 위문 답장이다.
수급자인 "生員"은 소산 李光靖이고 "좌랑"은 대산 李象靖으로 추정된다. 이상정1747년 예조와 병조에서 좌랑을 지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대산선생 年譜에 따르면 1749년 3월 "崔百弗庵이 내방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고, 그 달에 바로 이상정의 부친인 처사공의 상을 당했으니, 본 편지의 내용과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지난번 간 것(1749년 3월)은 뭔가를 해볼 요량이었지만, 병이 나고 혼잡한 조문으로[대산의 부친상을 당함] 정을 다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고, 말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못한 자신을 나무라는 것으로 시작한다. 돌아오는 길에 병까지 더해져 돌아와 자책감과 그리움에 시달리고 있던 차에 상대편의 편지를 받아 크게 위로가 되었음을 밝혔다. 고질병을 앓고 있는데다 상례 끝에 몸이 많이 상했을 상대를 걱정하며 서로 잘 보중하여 바람에 부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썼다. 이어서 복통 설사에다 종기까지 난 자신의 병증과 지난해 묵은 병이 재발한 셋째 동생의 정황을 기술했다. 게다가 노인의 병세가 심해져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끼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이 불효한 소치라는 자책을 하고 있으며 그로써 자식들의 공부에 많은 폐가 되고 있음을 솔직하게 전하고 있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박세욱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49년 최흥원(崔興源) 외 1인 위장(慰狀)

李 生員 佐郞 僉哀前。
答䟽上。省式謹封。
省式。頃進。蓋有所經營勇動者。而比抵卒爲病惱。隨衆弔唁
尙未稱情。歸路又添症催還。神思擾忽。所懷十分。未了一分。
所言又多疎略。歸臥窮廬。徒有耿耿者存。忽地人中
先垂問札。辭意周懇。正如更接
淸誨。奉讀蘇慰。不啻沈痾祛體。因伏審
哀中僉候。不免有疾患之苦。想添於毁柴之餘。爲之貢慮。
又何可已耶。惟願
從禮俯就。各自支保以副嚮往。興源。返泊非久。猝添非常腹
痛。轉成暴洩危劇者。殆數五日。向緩又數旬。而胃脘結氣。兩脇
撑飽。若將成脹而後已。三弟前年之疾。又皆發作。老人積憂
添症。氣息奄奄。委頓床席。轉側須人。莫非不肖致至。如此不
孝之罪。自知難容。煎泣罔措。無以爲喩。迷兒輩一切憂淟度
日。其課業無足言。可歎惜奈何。餘匪病倩可旣。伏惟
僉察。不備謹復。
己巳 五月 三日。崔興源 興漸 䟽上。
李 生員 佐郞 僉哀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