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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년 최흥원(崔興源)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748.2714-20150630.K2714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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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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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최흥원, 이의한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작성시기 1748
형태사항 크기: 31 X 3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칠계 경주최씨 백불암종중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48년 최흥원(崔興源) 서간(書簡)
1748년 5월 9일, 최흥원은 집안의 사정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공부 할 것을 이의한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최흥원은 제옹 장(霽翁丈) 김성탁의 죽음으로 그의 아들 김낙행이 슬픔이 지나쳐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하였다. 또 어머님과 동생들이 병을 앓고 있어 자신은 의학책만 보고 있다며 현재의 상황을 알리며 상대방에게 가지 못한다고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748년 5월 9일 崔興源은 집안의 사정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공부 할 것을 李宜翰에게 전하는 편지
1748년 5월 9일 崔興源(1705~1786)은 집안의 사정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공부 할 것을 李宜翰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智竗에서 작년 11월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先大夫께서 추증이 되었고, 상대방의 병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자신은 집안의 크고 작은 근심으로 人事를 빠트렸다고 하였다. 이의한에게 공부의 깊이는 얼마나 향상 되었고, 內外와 輕重을 分別한 것이 얼마나 되냐고 하였다. 또 학식이 넓은 것은 알지만 진취적으로 공부를 하여 핵심을 얻는다면 후배들이 보고 느낄 것이라 하였다.
최흥원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배움의 길을 놓쳤고, 작년부터 어머니의 병과 자신의 병도 심해져 의학 서적만 본다고 하였다. 進叔 崔興漸(1709~1771)은 작년 병중에 마마를 겪어 얼굴이 변하고 남은 고통도 심하다고 하였다. 立夫 崔興建(1712~1769)은 지난겨울 질병으로 거의 반년을 누워 있다고 하였다. 鶴洞丈이 방문하여 가난에 찌들고,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는 자식을 위해 의원과 약재를 구한다고 분주하였다. 蒼水의 나이든 벗이 다녀갔는데 착한 사람이 곤액을 당하는 것이 심하다고 하였다. 霽翁丈의 일은 차마 말을 할 수 없다며 伯子는 슬픔이 지나쳐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고 하였다. 從姉의 죽은 날이 다가와 가고자 하지만 병으로 가지 못한다고 편지를 마쳤다.
최흥원이 편지에서 말한 제옹장의 이야기는 金聖鐸(1684~1747)의 일이다. 1737년 김성탁은 스승 李玄逸(1627∼1704)의 누명을 구명하기 위해 伸寃疏를 올렸다. 하지만 왕의 노여움을 사 旌義에 유배 되고 그 뒤 光陽으로 이배되어 죽었다. 그의 아들 伯子 金樂行(1708~1766)은 효성이 지극한 인물로 아버지가 죽고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병을 얻었다고 한다. 편지의 내용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발신자는 崔興遠으로 본관은 慶州이고, 자 太初 · 汝浩, 호 百弗庵이다. 편지에 적힌 崔興源은 자신의 초명을 적은 것이다. 그는 1778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 · 敎官이 되었고, 1782장악원주부 · 공조좌랑을 거쳐 1784世子翊衛司左翊贊이 되었다. 죽은 뒤 1789년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졌고, 이듬해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백불암집』 8권 7책이 있다.
『백불암집』書에는 「答李季白(宜翰, 戊辰)」이라는 글이 실려 있는데 이 편지와 내용이 일치한다. 따라서 이를 통해 수신자는 李宜翰이고 자가 季白인 인물로 볼 수 있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다.
『慶州崔氏匡靖公派大譜』, 新川族譜社, 1992
1차 작성자 : 김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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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48년 최흥원(崔興源) 서간(書簡)

老兄 謹拜 上謝狀。
李生員 下史。謹封。
春中。自智竗得。伏承前年至月半間所
惠書。以悉。
先大夫有追榮
曠典。經年所苦。又得新差。閑界看討。新志篤好。令人
萬萬奉賀而起拜。傾嚮之不已。久以家中 大小憂病。一切休
廢人事。尙闕謝儀。想宜以不敏罪之也。伏惟近日。
靜養益勝。存省上得力浅深幾許。分別得內外輕重
者。又幾許耶。竊見
左右之學識非不博矣。苟能更加進取得約處。則其有益
於後輩觀感。又豈可量焉哉。深爲之祝。興源。本自庸下。早
孤失學。何敢有向人說者。兼之年來。母病沈痼。身病心腹之
苦。又日益甚。朝曛所事。不過撿考醫工文字而已。惟以仲叔
弟輩。氣質頗勝。志向甚好。固自有遠期之望矣。進叔。年前病中
經痘。旣換形餘苦又甚。立夫。前冬偶得奇疾。廢臥殆半
年。復常無期。以是益無世況可言也。鶴洞丈頃。又來訪。而
本困於貧。兼以其才子久病。奔走醫藥。意象可悶。蒼水
老益。數昨一往訪見。而新歸之餘。辛酸不去。善人之困。一何
甚哉。又一長吁。來往相對之間。雖不無多少講討。旣自魯
劣。未易有一分進益奈何。霽翁丈事。豈忍言。豈忍言。其
。又是純孝人也。方過於哀。殆柴盡云。又可淚矣。從姉
寃日。奄迫。心緖如新。此弟强病策驢。固欲同轡。而病
不可得。因失奉晤。又可悵然。智竗終祥。在八月望間。
是前。果有
臨唁之意。可寅緣一拜。竊自企望。伏惟。
恕察。不宣。謹謝狀。
戊辰 五月 初九日。小弟 崔興源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