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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 이위한(李緯漢)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678.4717-20150630.0625257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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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위한, 이영철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678
형태사항 크기: 29.2 X 49.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78년 이위한(李緯漢) 서간(書簡)
1678년(숙종 4) 12월 24일에 이위한(李緯漢)이 시조의 지석(誌石)과 배판(背叛) 노비(奴婢) 등에 관한 일로 이영철(李英哲)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노비들의 신원에 대해서 이영철이 훤히 알고 있는데 어째서 진즉에 새로운 노비안에 탈감(頉減)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 이름을 남겨 두어 뒷날의 시끄러운 사단을 야기했느냐고 책망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678년(숙종 4) 12월 24일에 李緯漢이 始祖의 誌石과 背叛 奴婢 등에 관한 일로 李英哲(1607~1681)에게 보낸 편지
1678년(숙종 4) 12월 24일에 李緯漢이 始祖의 誌石과 背叛 奴婢 등에 관한 일로 李英哲(1607~1681)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건대, 李英哲敎官에 제수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그는 1666년(현종 7)에 童蒙敎官으로 제수되었다. 먼저, 始祖의 誌石에 대한 일은 방금 眞寶의 通文을 보았더니 아마도 받아낼 길이 있을 듯하니 더없이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그러나 門中의 변고가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 通文이 이미 貴處에 도착하였는지 물었다.
또 듣기로 자손들이 함께 나아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비하는 자가 또한 많다고 하니, 지금 門中의 행태를 보건대 어찌 남들의 비난을 면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李緯漢李英哲이 이러한 뜻으로 門親을 勸起하여 수일 내로 빠짐없이 가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미상인데, 아무튼 李緯漢 자신도 어버이의 병환이 조금 낫기를 기다려 入去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때에 巡行하는 觀察使가 貴縣에 도착할 것이니 呈文하는 일의 때를 놓쳐서는 안 되는데 李英哲이 혹 심상하게 여길 것이 염려된다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자신의 아들 李在柱의 奴婢에 대한 일은 그놈들이 投托하고 배반한 실상이 명백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庫有司 및 首奴 春石 등이 奴婢들에게 뇌물을 많이 받고 이러한 가당치도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어찌 陶山書院에서 이러한 일이 생길 줄 생각이나 했겠느냐고 하였다. 이 奴婢들의 신원에 대해서 李英哲이 훤히 알고 있는데 어째서 진즉에 새로운 奴婢案에 頉減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 이름을 남겨 두어 뒷날의 시끄러운 사단을 야기했느냐고 책망하였다.
아울러 春石戍汗 등을 엄하게 다스리고 싶은데 安東府使의 題辭에 의거하여 이를 粘連하여 禮安에 呈訴하니 禮安縣監의 題辭가 또 괴이했다고 하면서, 이는 필시 春石 등이 誣訴해서 그럴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歲初에 친히 만날 것이니 그때 다 얘기하겠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李 察訪(李希哲인 듯함)에게는 겨를이 없어 편지하지 못했으니 이 편지를 함께 봐달라고 하였고, 黃 郞이 三嘉縣令을 만나 보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入去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李英哲(1607~1681)은 본관이 眞城, 자가 明叔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손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관직에 천거를 받아 敎官에 제수되었다. 隱拙齋 李守弘의 조부가 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678년 이위한(李緯漢) 서간(書簡)

兄主前 謹拜 上候狀。
李敎官 侍下史。 謹封。
近久阻拜。遡仰一念。未嘗少弛于中。
伏惟卽玆臘冱
體候起居連得萬重否。區區下忱。無日不弛。
弟。伏蒙
下賜。僅保昔狀。而老慈氣力。日向衰憊。此
間人子之情。何可勝喩。
始祖誌石事。卽見眞寶通文。庶有推
出之路。慶幸莫大。而門中之變。亦
莫此爲甚。未知其通文已到
貴處耶。且聞以子孫等未及齊進之故。
是非者亦多云。今見門中所爲。人言
何可免也。伏望以此意。
勸起門親。以數日內。使之無遺往見。
如何如何。弟亦苦竢親患之少歇。入
去伏計。巡使此時。亦巡到
貴縣。呈文之擧。亦不可失期。而第慮
念宗侍。或視之尋常也。更須
勿泛。千萬幸甚。仍且仰達。迷豚在柱
之奴婢事。其投托謀反之狀。皎如日星。
而庫有司及首奴春石等。多受賂物於奴婢
等處。致此千萬無理之事。豈料陶山有此事
也。其奴婢根因曲折。兄主旣已洞燭。則何不爲
趁卽頉減於奴婢新案。而至今留置其名。以起日後
鬧端。不亦未
安於書院乎。
此奴婢多有分
派處。名其上典。
或呈議送。或呈
京▣▣。欲痛治
春石戍汗等。此
亦不可不善處
也。且依安東
官題辭。粘呈
禮安。則其題亦
怪。此必春石
有誣訴而然。▣
今月初見他官人。
亦不無所聞。而
煩不敢縷縷耳。
餘。歲初當親
逢。其時可奉悉。
只祝迎新萬
福。伏惟
下照。謹拜上候狀。
戊午 臘月 二十四日。宗弟 緯漢 頓。

李察訪前。忙未各書。同照此書。如何。三嘉
河万亦下來耶。黃郞爲其相見。冒寒入去耳。
松燈下胡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