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9년(현종 10) 10월 8일에 李胄昌이 근황을 전하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李英哲에게 보낸 편지
1669년(현종 10) 10월 8일에 李胄昌이 근황을 전하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李英哲(1607~1681)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건대, 李英哲이 敎官에 제수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그는 1666년(현종 7)에 童蒙敎官으로 제수되었다. 먼저, 예전에 자신이 상경하였을 때 李英哲의 부인의 부고를 듣고 그지없이 놀라고 애통했다고 하였다. 이 부고를 山陽 便으로 들었는데 뒤늦게 전해들은 것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고 또 몇 년 몇 월인지도 자세하지 않았으니, 격조한 데 따른 안타까운 마음을 한층 가눌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 뒤로 李英哲이 得男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기쁜 마음이 간절했다고 하였다.
李胄昌은 李英哲을 만나서 위로하고 싶었으나 門中의 喪事가 거듭되고 一家의 病故가 얽혔으며 빈궁한 처지에 골몰되어 방도가 없었다고 하였다. 지난해 겨울에는 紅疫으로 딸아이 하나를 잃었고 올봄에는 또 역병으로 12세 된 사내아이를 잃었다고 하였다. 다른 두 아이도 한꺼번에 병으로 누워 여름을 지냈다고 하였으며, 그 어미는 전염병을 피해 龍宮으로 나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간에 골몰되고 비통한 상황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찌 인사를 차릴 수 있었겠느냐고 하였다. 嶺南으로 왕래하지 못한 것이 지금 거의 7, 8년이 되어 李英哲을 찾아뵈려는 생각도 비록 어긋났으나 편지까지도 하지 못한 데 대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끝으로, 李英哲의 모친과 李英哲의 안부를 묻고 李英哲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전하였다.
李英哲(1607~1681)은 본관이 眞城, 자가 明叔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손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관직에 천거를 받아 敎官에 제수되었다. 隱拙齋 李守弘의 조부가 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