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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년 이주창(李胄昌)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7+KSM-XF.1669.4717-20150630.062525700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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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주창, 이영철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669
형태사항 크기: 28.8 X 43.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의인 진성이씨 의인파 은졸재고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69년 이주창(李胄昌) 서간(書簡)
1669년(현종 10) 10월 8일에 이주창(李胄昌)이 근황을 전하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영철(李英哲)에게 보낸 편지이다. 영남으로 왕래하지 못한 것이 지금 거의 7, 8년이 되어 이영철을 찾아뵈려는 생각도 비록 어긋났으나 편지까지도 하지 못한 데 대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669년(현종 10) 10월 8일에 李胄昌이 근황을 전하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李英哲에게 보낸 편지
1669년(현종 10) 10월 8일에 李胄昌이 근황을 전하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李英哲(1607~1681)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건대, 李英哲敎官에 제수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그는 1666년(현종 7)에 童蒙敎官으로 제수되었다. 먼저, 예전에 자신이 상경하였을 때 李英哲의 부인의 부고를 듣고 그지없이 놀라고 애통했다고 하였다. 이 부고를 山陽 便으로 들었는데 뒤늦게 전해들은 것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고 또 몇 년 몇 월인지도 자세하지 않았으니, 격조한 데 따른 안타까운 마음을 한층 가눌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 뒤로 李英哲이 得男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기쁜 마음이 간절했다고 하였다.
李胄昌李英哲을 만나서 위로하고 싶었으나 門中의 喪事가 거듭되고 一家의 病故가 얽혔으며 빈궁한 처지에 골몰되어 방도가 없었다고 하였다. 지난해 겨울에는 紅疫으로 딸아이 하나를 잃었고 올봄에는 또 역병으로 12세 된 사내아이를 잃었다고 하였다. 다른 두 아이도 한꺼번에 병으로 누워 여름을 지냈다고 하였으며, 그 어미는 전염병을 피해 龍宮으로 나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간에 골몰되고 비통한 상황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찌 인사를 차릴 수 있었겠느냐고 하였다. 嶺南으로 왕래하지 못한 것이 지금 거의 7, 8년이 되어 李英哲을 찾아뵈려는 생각도 비록 어긋났으나 편지까지도 하지 못한 데 대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끝으로, 李英哲의 모친과 李英哲의 안부를 묻고 李英哲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전하였다.
李英哲(1607~1681)은 본관이 眞城, 자가 明叔이다. 그는 退溪 先生의 손자 李純道의 손자이다. 곧 眞城李氏 宜仁派에 속해 있다. 관직에 천거를 받아 敎官에 제수되었다. 隱拙齋 李守弘의 조부가 된다.
1차 작성자 :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669년 이주창(李胄昌) 서간(書簡)

李敎官宅。
叔主前 謹再拜 上候書。 謹封。
積歲阻候。消息夐絶。凡在慶弔。有若不
相議者。遠地人事之不得準擬者如是。而豈
有甚於近來乎。往年上京時伏聞
叔母主訃。驚悼罔涯。不知仰喩。此宜因山陽便
得聞。而至於後時傳聞若此。且未詳其某年
某月。到此尤不勝隔阻之歎也。厥後又伏聞
叔主有弄璋之慶。旋切欣喜。仰賀靡任。侄之
情義。豈不欲一進以慰。而數年來門中喪患
連仍。一家疾病纒綿。且汨於貧窮。無由撥
出。而去年冬。以紅疫喪一女兒。今春又以大疫。
十二歲男兒又化。其他兩兒。一時連臥。經夏
辛苦。厥母則避出龍宮。尙未還來。這間汨
沒悲痛之狀。有難容喩。則何能置身於
人事上乎。不得往來於南中。今幾七八年所。
進拜之計。雖已左矣。而一書仰候。亦且頓闕。
伏罪千萬。無所容達。伏未知年來
大母主精神氣體何如。
侍奉起居。亦復何如。慕用之忱。則不敢少
弛于中。而不可謂有其忱也。萬萬下懷。筆舌難
究。只恨山川之間闊。臨紙悵缺而已。餘。伏祝
侍奉萬重。不備。伏惟
下察。謹再拜。上候狀。
己酉 十月 初八日。再從侄 服人 李胄昌